한 언론사 조사결과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250명(83.3%)이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식에서 “개헌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운을 떼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국회에 개헌특위를 만들자고 맞장구쳤다.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는 ‘징검다리 대통령’이라는 개헌 플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들이다. “30년 된 87년 체제는 다원화된 시대적 흐름을 담지 못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심각하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속내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는 구석도 없지 않다. 여권 핵심 인사는 “노무현·이명박정부가 임기 말에 왜 개헌을 추진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관료를 부릴 수 없는 구조가 현행 5년 단임제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임기 초반 서슬 퍼런 개혁 바람만 피하자는 ‘권불 3년 프레임’이 공무원 사회에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다. 바짝 엎드려 힘 빠질 때를 기다리고, 심지어 몰래 의원들을 찾아 “제발 국회에서 말려 달라”고 부탁하는 공직자들의 행태를 전하며 통탄하기도 했다.
때문에 현 체제로는 어떤 인물이나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더라도 제때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국민의 삶도 바뀔 여지가 없다고 했다. 소신껏 일해 봐야 책임질 일만 생긴다는 ‘변양호 신드롬’을 생각하면 공무원 탓만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권 관계자는 “역대급 카리스마에 콘크리트 지지층을 거느린 박근혜 대통령도 뜻대로 못한 게 많은데 차기 대통령은 안 봐도 ‘비디오’”라고 했다.
최근 여권 내부에선 ‘개헌 대통령’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20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2020년 상반기에 임기를 마치고 재임 중 개헌을 마무리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대통령 후보의 출현을 가정한 각본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해 임기 절반을 반납하는 징검다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은 대선판을 뒤흔들 폭발력 있는 재료라는 자신감도 묻어 있다. 하지만 정치 상황을 뛰어넘는 시대의 요구와 국민적 열망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이상 섣불리 개헌을 추진하다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1년 먼저 내려놓겠다는 전제를 달아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정략적 의도가 있다는 비판 속에 개헌론이 잦아든 바 있다.
현 체제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호소 역시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정권 운영의 편의만을 염두에 둔 정치 논리에 근거한 개헌이라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감 없이 정치적 유불리나 정략적·당파적 차원에서 제기된 개헌론은 성공할 수 없다.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개헌론이 이번에도 말잔치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선 권력 운영의 편의가 아닌 시민 권력의 강화라는 대전제가 달려야 한다. 또 끝없는 설득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각오도 필요하다.
9일 후면 제헌절이다. 국가통치체제와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규범인 헌법의 공포를 기리는 날이다. 내년 제헌절은 대권에 도전할 여야 후보를 뽑는 경선 때문에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이다. 과연 그때 여권에 떠도는 시나리오처럼 징검다리 개헌 대통령이 되겠다는 주자가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한장희 정치부 차장 jhhan@kmib.co.kr
[세상만사-한장희] 개헌, 정말 해야 하나
입력 2016-07-07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