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내자 돌아온 의식…“노벨문학상 받을 거예요”

입력 2016-07-08 20:36 수정 2016-07-11 16:35
손가락 몇 개와 눈동자만 간신히 움직이는 장유진씨가 출간된 자신의 동시집 ‘좋아요 좋아요 나는’을 품에 안고 기뻐하고 있다.
엄마 이성미씨가 딸에게 시집을 보여 주고 있다.
교회 권사가 장씨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포공원로 한 요양병원 재활치료실. 환자복을 입은 장유진(21·안산제일교회)씨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가는 다리에 전기치료기를 부착하고 있다. 어머니 이성미(52)씨는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하는 딸 옆에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서 있다.

장씨는 뇌병변 장애 2급 장애인이다. 오른쪽 상체를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분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한 달 전만 해도 의식이 없었다. 음식도 목에 연결된 관을 통해 유동식을 먹다 의식을 회복하면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장씨는 지난해 11월 21일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8개월째 투병 중이다.

장씨는 ‘시 쓰는 장애인 소녀’로 유명하다. 그동안 의식이 없었던 장씨는 지난달 자신의 동시집 ‘좋아요 좋아요 나는’의 발간을 계기로 기적같이 의식이 돌아왔다.

시집은 김용한 밀알학교 교감과 교회 장로, 출판사 창조문예사가 의기투합해 결실을 보게 됐다. 어머니는 시집이 유진이를 깨운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시집이 출간된 것을 보고 정말 좋아했어요. 시집을 보곤 말을 못하니 숨소리가 거칠어졌어요.”

장씨는 7세 때 병원에서 뇌동정맥 기형이란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뇌혈관이 실타래처럼 뭉쳐 있는 선천성 희귀병이다. 지금까지 14차례 뇌출혈로 쓰러져 일곱 번 대수술을 받았다.

장씨는 2002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뇌출혈로 입원했다. 어머니는 “당시 입원했던 병원의 14층 병동 창가에서 자동차 전조등을 보고 ‘땅에 별들이 내려앉았다’고 표현한 첫 시를 썼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써 온 시가 종합장으로 58권 1만여편에 달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한 시집에는 1∼20권의 시 137편이 수록됐다.

2013년 문예 글짓기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2014년 한국장애인문학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성균관대, 숙명여대, 중앙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나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입학을 포기했다.

장씨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아나운서에 도전, 지난해 롯데홈쇼핑에서 선발하는 작가·아나운서에 합격했다. 안산제일교회에서는 성가대로도 열심히 활동했다. 자신의 꿈인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작품 활동도 쉬지 않았다.

건강할 때 장씨는 늘 어머니께 당부했다. “다음에 또 쓰러지면 병원에 데려가지 말아요. 하나님을 알고 나니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그러나 딸이 다시 쓰러지자 부모는 앞뒤 가릴 새 없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재활치료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딸에게 어머니는 “유진이 밥 잘 먹고 자꾸 움직여서 다시 일어나야 해. 할 수 있겠어?”라고 울먹였다. 장씨는 대답 대신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안산=글·사진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