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이라크전 참전은 총체적으로 잘못된 침공”

입력 2016-07-06 21:29 수정 2016-07-07 01:35
이라크전 당시 영국군이 주둔했던 이라크 바스라 기지에서 2003년 5월 29일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자국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칠콧 보고서 작성을 지휘한 존 칠콧 위원장이 6일(현지시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잘못된 정보에 의한 침공이었으며 외교적인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미약했고 참전이 마지막 수단은 아니었다. 총체적으로 잘못된 판단에 의한 전쟁으로 참전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이라크전 조사위원회의 존 칠콧 위원장은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쟁에 참전한 자국 토니 블레어 행정부의 잘못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같이 총평했다.

2009년 고든 브라운 총리의 지시로 설치된 이 위원회의 공식 보고서는 150만건의 방대한 정부 자료를 분석하고 기밀문서 공개 범위를 둘러싼 줄다리기 끝에 조사 시작 7년, 전쟁 발발 13년 만인 이날 발표됐다. 위원장의 성을 따 ‘칠콧 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최악의 외교정책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이라크전 참전에 대한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공식 평가로 받아들여진다.

칠콧 위원장은 이라크전 참전 경위에 대해 “잘못된 정보(flawed intelligence)에 의한 침공이었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영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WMD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토대로 침공을 결정했다. 미·영은 유엔의 무력 사용 승인이 떨어지기도 전인 2003년 3월 20일 ‘유엔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안보리 결의 1441호만을 근거로 침공을 단행했다.

칠콧 위원장은 이에 대해 “영국이 충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참전이 마지막 수단은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실제 이라크가 함락되고도 WMD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듬해 미국 조사단도 “이라크에 WMD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칠콧 위원장은 “당시 블레어 행정부의 장관들은 미국의 계획이 부적절함을 알고 있었다”며 “블레어는 자신이 미국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지만 참전 이후 중요한 결정 때 자주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당시 블레어는 반대 여론에도 참전을 결정해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칠콧 위원장은 “영국은 침공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이라크 국민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전으로 영국군 179명과 미군 4500여명이 사망했으며, 최소 10만명 이상의 이라크 민간인이 희생됐다.

그러나 칠콧 위원장은 블레어 전 총리를 전범재판에 회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보고서에서 불법행위의 증거가 나오면 블레어를 전범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블레어는 성명을 내고 “이라크전 참전과 관련된 실수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사람들이 찬성하든 반대하든 나는 선의에서, 또 이 나라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믿음에서 결정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의회 보고를 통해 “영국 정부가 참전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보고서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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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