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애호가라면 누구나 라운딩할 때마다 골프공을 사야 한다. 자그만 공을 치다 보면 러프로 날아가고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해저드로 빠져버리기 일쑤다. 그런 골프공은 한 개에 '통닭 한마리' 값일 정도로 비싸다. 국내 골퍼들은 지금까지 대다수가 외국산 골프공을 써왔다. 국산 골프공의 품질이 조악하고 좋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국내 골프공 시장에 강자가 나타났다. 국내 기업 볼빅이 바로 주인공이다. 7년 전 문경안(58) 회장이 이 기업을 인수한 뒤 국내 골퍼 10명 중 한두 명은 볼빅 골프공을 쓰게 됐다. 골프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한 브랜드가 이처럼 단시간에 성공을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습관적으로 자신이 쓰던 볼만 찾는 골프 수요층의 관성을 뚫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빅의 성공은 업계는 물론, 스포츠계 전체에서도 보기 드문 일로 평가된다.
이제는 국내 투어프로는 물론, 미국여자골프(LPGA)와 남자프로골프(PGA)에서도 볼빅의 로고가 박힌 모자와 티셔츠, 볼빅 골프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글로벌 골프 브랜드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6일 국민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문경안 회장을 만났다. 첫인상부터 강인한 사업가의 단단한 얼굴과 자신감 가득한 말투가 눈에 확 띄었다. 가장 궁금했던 게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에 볼빅의 성장 신화를 써내려가게 됐느냐'는 것이었다.
-다른 사업을 하다가 골프공 사업에 뛰어든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처음 직장은 종합상사였다. 10년 다니다 건설회사인 건영으로 옮겼는데 1996년 회사가 부도났다. 40대가 돼서 직장을 구하려니 힘들어서 철강 유통회사인 비엠스틸을 창업했다. 다행히 사업이 잘됐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새 사업이 굳이 골프공 사업이었다는 점이 궁금한데.
“처음에는 지인들로부터 건축, 전선생산, 정보기술(IT) 분야 등의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제가 골프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때 국내 골프공 생산업체인 볼빅이 눈에 들어왔다. 소비자로 20년 동안 골프공을 열심히 써봤고, 어떤 게 소비자 심리에 맞고 좋은지 잘 구별할 수 있겠다 싶었다. 볼빅에서 생산한 ‘비스무스’란 볼이 참 좋았는데, 골퍼들한테는 안 팔렸다. 이유가 뭘까 생각하게 됐다.”
-거의 망해가는 회사를 인수한 셈이었다. 어떻게 성공하게 됐나.
“골퍼들만큼 까다롭고 편견이 심한 구매자가 없다. 국산 볼이 좋은데 가격이 저가면 안 산다. 맨 처음엔 품질을 높였다. 원료도 바꾸고, 설계도 바꿨다. 만족스러운 골프공 성능이 나오자마자 가격을 대폭 올렸다. 우리 볼이 타이틀리스트만큼 성능이 좋은데 그보다 더 쌀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브랜드의 골프공은 전부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만든다. 골프공이 아닌 공산품은 이런 나라에서 생산된 게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가격도 훨씬 더 낮다. 그런데 골프공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더 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국산이면 생산단가가 외국산보다 더 높을 텐데.
“그렇다. 처음에 이 회사를 인수할 때 경영전문가들이 전부 ‘R&D(연구·개발)만 한국에서 하고 생산공장은 중국에 차려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반대했다. 그렇게 하면 기존 직원들이 다 해고된다. 우리가 하이퀄리티 제품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팔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사업이 순탄대로였나.
“아니다. 인수하던 해 미국의 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가 국가별 골프공을 다 수거해 테스트를 했는데 국산이 꼴찌였다. 수출하는 골프공은 전부 덤핑으로 넘겨진 땡처리용이었다. 우리는 그때 수출을 올스톱했다. 매출이 낮아졌고, 견디기 힘들었지만 꾹 참았다. ‘질을 높여 제값 받을 때 반드시 해외시장을 뚫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2011년부터 PGA와 LPGA 마케팅을 시작했다. 무명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아무 대가 없이 ‘우리 볼을 써보고 좋으면 계속 써 달라’고 했는데, 다행히 그 선수들은 아직도 쓸 정도로 우리 제품을 신뢰하게 됐다. 여러 군데에서 문의가 왔고, 미국 쪽 유통업체들이 먼저 ‘골프공 좀 수출해 달라’고 요청하더라. 4년을 기다린 끝에 2013년 수출을 재개했다. 수출을 중단할 때는 골프공 한 박스에 10달러 내외였지만, 다시 수출할 땐 45∼65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유명 선수들이 선뜻 볼빅 골프공을 쓰던가.
“선수들 벽이 소비자들 벽보다 훨씬 높다. 처음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집으로 찾아다니며 읍소해도 안 됐다. ‘써줄 테니 다른 브랜드 스폰서 금액보다 두 배 이상 달라’는 선수도 많았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그 무렵 한 한국여자골프(KLPGA) 대회에서 ‘우리 볼을 쓰면 우승시 1억원을 주고 예선통과만 해도 50만원씩을 주겠다’고 제안했더니 배경은 선수, 고(故) 구옥희 전 KLGA 회장 등 유명선수 8명이 볼을 신청했다. KLPGA 대회가 1년에 8개밖에 없을 때였다. 대회마다 볼빅이 따로 최고급 승용차 등을 부상으로 걸고, 선수 후원에 올인했다. 처음엔 조금씩 사람들이 몰리더니, 어느 순간 볼빅 골프공을 찾는 소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세계적인 골프장비 업체 가운데 골프공만 생산해 글로벌 기업이 된 사례는 없다. 종합장비 업체로 발전할 계획은 없나.
“당연히 있다. 지금까지 골프공에 매진했지만 올해부터 퍼터, 골프채도 생산할 계획이다. 토털 골프브랜드로 나아갈 것이다. 한때 일본의 유명 브랜드였던 ‘게이지 퍼터’가 먼저 우리를 찾아와 퍼터 콜라보레이션을 하자고 제안해 받아들였다. 골프채 사업도 인수·합병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골프산업의 한계 같은 것은 못 느끼나.
“가장 큰 아쉬움은 국내 골퍼들의 외국산 선호다. 우리 남녀 골퍼들의 실력이 세계적인데, 우리 기업 중에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경우는 없다. 국내 주말골퍼들조차 ‘일제’ ‘미제’를 찾는다. 품질로 평가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풍토를 우리 회사가 만들어 나가겠다. 정부와 관계부처의 지원도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키워주는 것은 결국 소비자와 정부다. 소비자들이 사주고, 정부가 밀어주면 참 좋겠다. 꼭 볼빅이 아니라 해도 이젠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글로벌 브랜드가 대한민국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됐다.”
-LPGA보다는 PGA 선수들 대상 마케팅이 좀 미진한 것 같다.
“PGA도 정말 많은 선수를 후원하고 싶다. 그런데 LPGA 선수보다 PGA 선수가 훨씬 스폰서 금액이 높다. 2부 투어 유망주들을 미리 발굴해 후원하는 방식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문경안 회장 약력
△1958년 5월 9일 경북 김천 출생△1977∼1987년 ㈜선경 근무△1987∼1996년 건영통상 사업부장△1999∼2016년 비엠스틸 대표이사 △2009∼2016년 볼빅 대표이사 회장△2009∼2016년 건양대 경영학과 겸임교수
신창호 스포츠레저팀장 procol@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문경안 볼빅 회장] “한국 골프공은 ‘형편없는 싸구려’ 편견 깼죠”
입력 2016-07-07 17:17 수정 2016-07-07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