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 → 행복센터’ 업그레이드… ‘찾아가는 복지’ 허브로

입력 2016-07-06 21:35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읍·면·동 복지 허브화’ 선도 지역인 서울 중랑구 면목3·8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새로 바뀐 ‘행정복지센터’ 현판을 보면서 나진구 중랑구청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인천 부평구 부평4동 통장들이 홀몸 어르신을 찾아 안부를 살피는 모습. 부평4동주민센터 제공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조모(57)씨는 ‘면목3·8동 맞춤형 복지팀’ 덕분에 오랜 고립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조씨는 10여년 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무적자(無籍者)’로 살아왔다. 가방공장에 다니며 월 80만원으로 겨우 생계를 이었다. 오랫동안 폐결핵을 앓았지만 건강보험이 상실돼 약국과 병원도 갈 수 없었다.

지난 5월 말 집에서 쓰러진 조씨를 이웃이 발견해 주민센터에 연락했다. 맞춤형 복지팀 김민중(38) 주무관은 곧바로 조씨의 반지하방을 찾았다. 처음엔 ‘돈이 든다’며 병원에 가기를 한사코 거부했다고 한다. 김 주무관은 “집안에 두유와 미숫가루밖에 없었다. 영양결핍에 폐결핵이 악화된 것 같았다”고 전했다.

김 주무관의 끈질긴 설득에 조씨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조씨는 주민센터와 협약을 맺은 녹색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고 있다. 주민등록 재등록과 건강보험 재취득 절차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수개월 밀린 월세와 체납 공과금 납부도 지원받을 예정이다. 조씨는 “반신반의했는데 도움을 받으니 고맙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렇게 혼자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복지 사각지대 누비는 ‘맞춤형 복지팀’

동(洞) 주민센터(옛 동사무소)가 변신하고 있다. 행정 서류를 떼는 민원처리 기관에서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실현하고 주민들 삶의 질을 챙기는 ‘허브(중심)’로 거듭나고 있다. 간판도 ‘행정복지센터(행복센터)’로 바꿔 단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면목3·8동 주민센터를 찾아 ‘복지 허브화’ 진행 상황을 살펴봤다. 이곳은 정부가 지난 2월 말 선정한 읍·면·동 복지 허브화 33개 선도지역 가운데 하나다. 전체 인구 2만8102명(1만2594가구) 가운데 복지 대상자가 8192명(중복 포함)이나 된다. 3명 중 1명(29.1%)이 기초수급·장애인·기초연금·차상위·한부모가정 등의 복지 지원을 받고 있다. 최원태 동장은 “일용직 근로자, 홀몸 어르신 등 저소득층이 몰려있어 중랑구에서도 복지 수요가 특히 많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이 주민센터에 맞춤형 복지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복지행정팀 소속 공무원 4명이 모든 복지 업무를 처리했다. 이들은 청소·환경 등 일반 행정 업무까지 감당해야 했다. 이른바 ‘복지 깔때기’ 현상이다. 쏟아지는 민원 해결에 바빠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팀장을 포함해 4명으로 구성된 맞춤형 복지팀이 추가로 신설되면서 달라졌다. 찾아가는 복지 상담과 사각지대 발굴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558회 방문 상담, 587건의 사각지대 발굴이 이뤄져 공적급여 신청(110건), 각종 서비스 연계(407건), 통합사례 관리(34건)로 이어졌다. 통합사례 관리는 건강·가족관계·경제·고용·생활환경 등 복합적인 문제 상황에 처한 대상자에게 병원 등 민간기관과 연계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준석 맞춤형 복지팀장은 “몇 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에게도 이런 손길이 있었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 부평구 부평4동 주민센터는 맞춤형 복지팀 신설과 함께 지난달에 상시적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부4친친’(부평4동 모두 친한 친구) 네트워크를 출범했다.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34명의 통장과 지역단체 회원, 다문화 알리미, 지구대 경찰 등 120여명이 복지 도우미로 활동하는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짠 것이다. 통장들은 매월 한 차례 157명의 홀몸 어르신들을 방문해 안부를 살핀다. 김숙희 맞춤형 복지팀장은 “남편의 실직과 장기 월세 체납으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20대 임신부를 찾아내 의뢰하는 등 위기가정 발굴에 통장들의 역할이 크다”고 전했다.

삶의 질 높이는 ‘생활복지 공간’으로

또한 주민센터는 생활복지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면목3·8동 주민센터는 최근 ‘면목생활지원센터(공구도서관)’를 열었다. 센터에선 전동 드릴과 드라이버, 전선 등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공구들을 무료로 주민들에게 빌려준다. 한부모가정이나 홀몸어르신 등 소외계층의 요청이 있으면 자원봉사단체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 정리 수납, 해충 박멸, 이사 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면목3·8동 주민센터 옥상에 설치된 ‘빨래방’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빨래방은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건강에 위협받는 이들을 위해 매주 한 차례 이불빨래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면목3·8동의 강춘근 12통장은 “예전에는 후원 물품만 전달하면 끝이었다. 이제는 어르신들이나 위기가정의 얘기를 들어주고 필요로 하는 복지 서비스가 뭔지 세세히 살피니까 주민센터가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은

복지공무원 직접 방문해 상담 개개인 상황에 맞춰 통합 지원


박근혜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읍·면·동의 복지 공무원이 직접 주민을 찾아가 상담하고, 각자 처한 상황에 맞는 통합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복지 체감도를 높이고 복지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제2, 제3의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사업은 2014년부터 2년간 시범기간을 거쳐 올해 2월 최종 확정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찾아오는 민원인의 복지급여 신청·접수에 머물렀던 읍·면·동 주민센터가 보다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통해 진정한 주민의 복지센터로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와 행정자치부는 지난 2월 롤 모델이 될 선도지역 33곳(30개 시·군·구)을 선정했다. 이들 지역에선 ‘맞춤형 복지팀’이 우선 신설돼 지난 4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맞춤형 복지팀은 사회복지직 등 사회복지 업무 경력자를 팀장으로 두고 팀장을 포함해 3명 이상의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구성되도록 했다. 필요에 따라 통합사례관리사나 방문간호사 등 전문 인력을 추가 배치할 수 있다.

복지부는 6일 33개 선도지역의 3개월간(4∼6월) 실적을 공개했다. 제도 시행 전과 비교했을 때 복지 사각지대 발굴 건수는 71.9%, 찾아가는 상담 건수는 89.5%, 서비스 연계 건수는 84.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읍·면·동 주민센터의 평균 실적과 비교하면 성과는 더 분명했다. 선도지역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건수는 전국 평균보다 4.8배 많았다. 찾아가는 상담은 5.3배, 서비스 연계 건수는 6.9배에 달했다. 복지부는 “통(이)장 등 지역주민 3679명이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선도지역을 중심으로 올해 안에 933개 읍·면·동에서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2017년에는 2100곳, 2018년에는 모든 읍·면·동(3502곳)에서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년까지 추가 확충이 진행되고 있는 복지 인력 6000명 중 4800명을 우선 배치할 계획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