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비서 며느리

입력 2016-07-06 18:49

고백하건대 국회에서 처음 친인척 보좌진을 접한 건 20년 전이다. 15대 국회에 입성한 한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았는데 앳된 여비서가 눈에 띄었다. 뭔가 좀 이상한 촉이 왔다. 나이 어린 이 여비서를 대하는 다른 보좌진들의 태도가 달랐다. 나중에 들으니 의원의 며느리였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많은 독자들이 기자의 도덕불감증을 탓하겠지만 그때 분위기는 그랬다. 같은 층의 다른 의원은 친동생을 보좌관으로 뒀다. 동생을 통해 형의 정치 노선과 정책을 취재하려고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지구당이 있었던 당시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친인척을 사무국장 등 지역 사무실 인력으로도 썼다.

서영교 의원의 가족 채용 파문이 불거진 뒤 20대 국회에서만 40명이 넘는 친인척 보좌진이 보따리를 쌌다. 이 중엔 5촌 조카도 있고, 동서도 있고, 시조카도 있다. 친척이라고 칠 수 있을까 할 정도의 촌수가 먼 이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의원들은 과감히 혈육의 정을 끊어 버렸다.

국민들의 1차적 분노는 청년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일가붙이를 고액 연봉자로 채용하는 국회의원들의 갑질 행태에서 폭발했다. 하지만 근저에는 금배지에 대한 누적된 미움이 깔려 있다. 반면 의원들이 이들을 두는 것은 단순히 실업자 구제 차원만은 아니다. 다수의 친인척 보좌진이 회계나 운전을 담당하는 이유와 맞물려 있다. 돈과 행적 등 은밀한 일을 맡기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의원 입장에서 배신의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여야가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기준을 마련키로 했으니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처럼 마녀사냥 식 퇴출은 좋지 않다. 실력으로 국회에 들어온 이도 적지 않다. 17대 국회부터 심재덕, 유시민, 김영록, 김광진, 서기호 전 의원을 보좌해 온 안호영 의원의 전 비서관도 해당된다. 6촌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집안의 가장인 그를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어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매정하다.

한민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