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일 퍼붓던 장대비가 잠시 잦아든 5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한 묘역에 지긋한 나이의 노신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참배객은 약 20명. 교계와 역사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참배객들은 차례로 묘소 앞으로 걸어 나와 묵념을 한 뒤 빨간 장미꽃을 헌화했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은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였다. 헐버트 박사는 정확히 130년 전인 1886년 7월 5일 입국해 우리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항일운동을 도왔다. 참배객들은 “고인이 얼마나 우리 민족을 사랑했는지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 속에 담긴 ‘한국선교의 꿈’=행사는 헐버트 박사의 유고를 묶은 책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사진)를 고인 묘소에 바치는 헌정식이기도 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 엮은 책에는 헐버트 박사가 1886년부터 1897년까지 쓴 글 57편이 담겼다.
김 회장은 묵념을 마친 뒤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포장한 책을 고인 묘소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헐버트 박사는 우리 민족의 숨은 영웅이자 한국학의 개척자였다”며 “고인의 글을 책으로 엮으면서 다시 한 번 경외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책에 담긴 내용은 다채롭다. 조선의 새해맞이 풍경을 적은 에세이, 한글을 예찬한 논문, 조선 설화나 속담을 분석한 원고….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들이다. 고인은 1887년 미국 한 매체에 게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 ‘조선 선교를 위한 호소’에 이렇게 적었다.
“1200만명의 조선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은 동양의 대표적인 보수의 나라로 알려졌고, 지금까지도 조선은 보수성 때문에 외톨이 신세나 다름없다. … 조선에서도 언젠가 종교가 융성하리라 확신한다. 기독교가 조선에 자리 잡아 종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조선에는 분명 선교사가 더 필요하고 그것도 당장 필요하다.”(483∼487쪽)
◇“헐버트 박사는 한국의 큰 스승”=헐버트 박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1895년 을미사변 후에는 고종을 보필하며 서방 국가들과의 대화 창구 역할을 맡았다. 해외에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한 활동도 전개했다.
교육 선교에도 적극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배재학당에서도 교사로 일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 등이 그의 제자다. 1890년에는 최초의 한글로 된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저술했다.
김종택 한글학회 이사장은 “헐버트 박사는 한글보다 훌륭한 문자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며 “그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린 한국의 큰 스승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민족의 혼을 깨운 스승… 그의 조선 사랑 오롯이
입력 2016-07-06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