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개구리는 덩치도 크고 좋아 보이지만 다 잡아먹어 생태계 먹이사슬을 파괴했지 않느냐. CJ헬로비전 합병 후 SK텔레콤은 황소개구리가 돼 방송통신 미디어 생태계를 흔들 것이다.”
현대원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 KT 사외이사 시절인 지난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시도는 그의 표현대로 황소개구리 출현을 막아야 한다는 반대편 목소리에 밀려 무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개월을 미적대다 파격적인 ‘합병 불허’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의 결정이 옳은 건지, 우리 사회에 독(毒)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반대의 결정을 했더라도 SK텔레콤이 황소개구리로 변할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지금은 모른다. 양쪽의 논리는 자신들 입맛대로 보기 좋게 포장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CJ헬로비전이 어느 통신사나 해외 업체에 인수되든 좋은 방송을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사실 지난해 12월 1일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신청서를 제출할 때만 해도 경쟁사인 KT나 LG유플러스 입장에서 막을 힘이 별로 없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당시 상황을 “불씨가 거의 꺼져 있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공정위가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반전이 일어나고 온갖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3월쯤부터 인수·합병의 잠재적 피해자인 지상파 방송사들이 들고일어나 파상공세를 펼쳤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도 서로 여론전에 올인하며 원수지간처럼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SK텔레콤의 인수·합병에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 언론까지 싸움판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누구 편인지 우회적으로 떠보기도 하고, 다른 편 같으면 투덜거리며 편 가르기를 하려는 뉘앙스도 풍겼다.
그래서 이쪽 싸움에는 아예 신경을 꺼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오물만 뒤집어쓸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더욱 가관인 것은 통신업계 동네 싸움이다. 업자들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상도덕(商道德)도 없이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이었다. 상도덕이 넘치면 담합이 될 수도 있지만 이쪽은 동종업계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정보’로 포장된 찌라시로 상대를 헐뜯는 소문이 난무했고, 음모론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결국 SK텔레콤은 ‘SK텔레콤의 자작극’이란 찌라시 유포자를 처벌해 달라고 수사의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은 공정위가 부추긴 측면이 크다. 결정을 못 내리고 좌고우면하니 ‘외풍을 타나’ ‘정치권 눈치를 보나’라는 의심을 하며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됐고, 결국 이번 결정까지 불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신뢰가 추락하니 그동안 물밑에서 떠돌던 루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KT 사외이사였던 현대원 수석이 영향을 끼쳤을까’ ‘지상파 방송사들의 압력에 무릎 꿇은 건가’ ‘총선 패배로 기류가 바뀌었나’ 등등.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듯이 공정위가 떳떳하지 못한 처신을 하니 음모론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공정위 결정으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는 어려워진 것 같다. 길 잃은 CJ헬로비전뿐 아니라 사양길로 접어든 케이블TV 업계만 딱하게 됐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을 좋은 값에 팔아서 목 좋은 곳에 좌판이라도 펼칠 요량이었는데 정부가 못 팔게 막아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그쪽 업계에선 “그럼 공정위가 CJ헬로비전을 다른 통신사, 방송사에 팔아줄 수 있느냐. 대안도 없이 못 팔게만 하면 되느냐”는 항변이 들린다. 힘없는 케이블TV 업계의 활로를 막는 건 정부의 또 다른 월권 아닌가.
노석철 산업부장 scroh@kmib.co.kr
[데스크시각-노석철] SK텔레콤과 황소개구리론
입력 2016-07-06 18:09 수정 2016-07-06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