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신학자’가 안내하는 2000년 기독교史 속으로

입력 2016-07-06 19:19
책 ‘기독교의 역사’에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함께 실렸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예배실의 벽화인 필리피노 리피의 ‘베드로의 순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이유로 로마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포이에마 제공
기독교의 역사
15세기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에서 만든 라틴어 성경 필사본.
16세기 프랑스 파리의 신·구교 간 종교전쟁을 그린 프랑수아 뒤부아의 '성 바르톨로뮤 축일의 대학살'.
20세기 1910년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의 한 장면.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다 훑어보겠다? 씨 뿌리는 노력 없이 열매를 바라는, 다소 뻔뻔한 심보일지 모른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시작해 로마에서 꽃을 피우고, 서유럽을 지배한 뒤 동유럽과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점령한 기독교. 그리고 다시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져나간 발자취를 살펴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빡빡한 여정이라도 훌륭한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이 달라지듯, 이 책과 함께라면 2000년 넘는 기독교의 발자취 탐구가 조금은 수월해질 듯하다.

저자는 무신론자에서 회심한 뒤 신학을 연구하며 기독교 역사와 교리, 변증까지 여러 방면에서 저술활동을 해 온 신학자이자 역사가다.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최근엔 과학과 신학의 관계 등으로 관심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주제를 완벽히 분석한 뒤 객관적이면서도 균형있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그만의 글쓰기가 빛을 발한다.

‘60년경 어느 때쯤, 로마 당국은 로마 중심부에 모종의 새로운 결사가 있으며, 이 결사에 가입하는 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음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소설의 첫 문장 같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문구로 책은 시작한다. 첫 장은 일종의 유대교 개혁운동으로 시작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자리 잡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사회의 수직 위계 구조에서 밑바닥에 자리한 사람들이 자신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함양할 수 있게 해줄 가치 체계를 발전시켰다.…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사회로 나아가 부조 활동을 펼치는 것을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본질로 여겼던 것 같다.…당시 기록은 기독교 사상이 자신들의 삶에 끼친 영향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 끌려 이 사상을 깊이 생각하게 된 이들이 많았음을 일러준다(34∼35쪽).”

저자는 이렇게 시작한 기독교가 개신교와 가톨릭, 동방정교회로 어떻게 갈라져 나가고 상호작용을 펼쳤는지, 또 저마다 각각의 시대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변모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초기교회시대(100∼500년), 중세(500∼1500년), 서유럽의 종교개혁시대(1500∼1650년), 근대(1650∼1914년), 20세기(1914∼현재)로 크게 나눈 뒤 160개 항을 736쪽에 걸쳐 기술하고 있다.

최근 20년간 출간된 연구서 중 가장 훌륭한 문헌을 기초로 삼고,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따랐다는 저자의 말대로 책은 이것저것 잡다하게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삼위일체론이나 이신칭의 같은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를 둘러싼 논쟁들, 교회개혁 등 기독교의 변화를 촉구했던 시대적 흐름과 사건들을 빠뜨리지 않고 다루고 있다. 기독교의 역사를 단순 교회사로 축소하지 않고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고 그 의미를 포착해내는 저자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처럼, 읽다 보면 지금 이 시대에 대한 기술처럼 읽히는 문장이 적지 않다. 15∼16세기 성직자의 타락으로 교회 개혁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며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언급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1503년 세상에 나온 에라스뮈스의 ‘그리스도인 군사의 지침서’를 소개하며 “(이 책이) 혁명적 성격을 갖는 이유는 평신도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부흥의 관건이라는 대담하고도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때문(289쪽)”이라고 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은 순전히 겉으로 드러난 측면(이를테면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 강조하는 신앙 접근법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313쪽)” “평신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그들 자신을 더 이상 성직자에 복종하는 사람들로 여기지 않았다(315쪽)”고 한 부분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뒤 책꽂이에 꽂아두고, 특정한 시대나 인물, 개별 사건이나 주제가 궁금해질 때마다 꺼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저자는 한국, 중국,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기독교를 다루는 마지막 장에서 4쪽에 걸쳐 한국을 소개한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 등을 통해 기독교를 수용한 한국이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세계적인 대형교회를 세우고 선교사 파송국이 됐다고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소 단편적으로 소개된 점은 아쉽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