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마찰 가능성이 ‘밀실회의’ 정당화할 수 없다”

입력 2016-07-06 04:10

금융위원회(사진)는 5일 이른바 서별관회의의 비공식 논의 자료를 공개하면 통상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자료가 무분별하게 공개될 경우 광범위하고 예기치 않은 피해를 줄 수 있다”며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 등 무역규범과 상충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통상문제까지 야기되어 상계관세 부과 등으로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이 우려된다”고 서별관회의 논의 내용과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서쪽 별관에서 수시로 열리는 청와대와 관계장관, 기관장들의 협의회를 지칭하는 말로, 지난해 10월 22일 대우조선해양의 4조2000억원 지원 방안이 여기서 결정됐다. 정부는 당시 회의는 비공식적인 협의였기 때문에 회의록도 없고 자료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대우조선 지원이 정부의 지시로 이뤄졌다면 WTO에서 금지하고 있는 정부의 부당한 보조금 지급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이런 주장이 나와 논의된 바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일본 조선공업회 무라야마 시게루 회장이 “대우조선 지원이 공정한 경쟁조건을 왜곡하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지시한 것처럼 비치는 관련 문건이 제시되거나 주장만 나와도 상대국가에서 WTO 협정을 들어 제동을 걸 수 있다”면서 “한국 조선업의 흥망이 달린 문제”라며 비공개회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통상마찰이 있었다. 유럽공동체(EC)가 2002년 한국 정부의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WTO 협정에 위배되는 보조금이라고 주장하면서 WTO에 제소했다. 당시에는 3년여에 걸친 공방 끝에 한국이 승소했다.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고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위임이나 지시를 받아 구조조정에 참가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통상마찰 가능성이 밀실회의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WTO 협정도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데, 이를 피해가기 위해 자료를 숨기고 언론도 보도하지 말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WTO 위반이 아니라면 상대국을 설득하고, 위반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국회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 제너럴모터스에 보조금을 지급한 사례가 있고, 유럽에서도 조선업 구조조정을 정부가 지원했다. 정부도 지난 5월 OECD 논의 때에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주주로 참여할 때부터 이런 문제가 제기됐지만 WTO에 제소될 가능성은 낮고 통상마찰 문제가 될 소지도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와 관료들이 통상마찰 문제보다는 대우조선의 부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료를 숨기는 게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당시 서별관회의에서는 대우조선과 산은 책임자의 면책 문제까지 논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 세금 수조원이 왜 부실기업에 지원됐고 그 돈이 증발되도록 방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며 “어떤 이유로 누구의 잘못 때문에 부실이 커졌고 서별관회의에서 지원하기로 한 돈은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는지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