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창균] 정부 개입의 역설

입력 2016-07-05 18:57

표준적인 경제학 교과서는 몇 가지 이상적인 조건이 성립되는 경우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이 효율적임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그러나 이는 이상적인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 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의 결과가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은 이상적인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위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것이다. 시장 실패에 직면해 정부는 자원 배분 과정에 적극 개입, 시장 실패로 인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부가 시장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개입 자제가 나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개입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부 개입 자체를 반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교과서적 논의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시장 기능 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한 마중물이라는 멋들어진 작명과 달리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시장 기능 작동을 방해하는 경우를 특히 금융시장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중소기업 정책금융의 예를 들어보자. 중소기업 자금시장에서는 여러 시장 실패 요인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정부는 광범위하게 시장에 개입한다. 문제는 정부의 개입이 시장 실패의 범위와 정도에 대한 고민 없이 설계돼 정상적인 시장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모든 중소기업을 자금지원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금융회사가 신용 평가에 투자할 유인을 박탈하고 오로지 보증에만 매달리는 후진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자금의 절반가량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서야 이루어질 수 있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저신용 계층을 대상으로 생계 및 사업 자금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햇살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입 당시에는 담보만을 요구하고 신용대출을 도외시하는 금융회사의 행태를 강제로 바꿀 수 없으니 이들에게 상당한 시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 자연스럽게 신용대출을 유도하자는 취지가 강조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저소득층에 대한 저리의 자금 지원으로 바뀌었다. 보증기구가 손실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현재 구조 아래에서 금융회사가 신용심사 능력 강화를 위해 노력할 유인은 없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이 지나더라도 정부 지원 없이 시장이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적 지탄을 한몸에 받고 있음에도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서 있다. 임무가 종료된 후 책임 소재를 추궁당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구조조정 작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은행 외에 대안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 시장 여건 미성숙을 이유로 산업은행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독점하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금력과 경험을 보유한 산업은행의 위세에 눌려 민간은 시장 참여 자체를 봉쇄당해 왔고 그 결과 조선업 구조조정과 같은 대규모 판이 벌어지는 경우 이를 감당할 역량을 갖춘 민간 전문가 양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 조성을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은 출구전략이 반드시 전제된 이후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너무 깊숙이 침투해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고착화되는 경우 정부가 영원히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며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그러한 조짐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