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세상에 배신이 없을 순 없다. 정치판은 다른 분야보다 배신이 판을 치는 무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동원한다. 배신자로 지목된 사람과 배신당했다는 사람의 관점은 다르다. 배신과 소신의 경계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씨를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를 철석같이 믿지 않았다면 요직을 하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박 전 대통령은 눈을 감기 전 ‘김 부장 너마저’라고 읊조렸을지 모른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타의로 정계를 떠났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했지만 YS의 대통령 취임 후 퇴진 압력을 받았다. 그는 YS 뜻을 전하러 온 인사에게 “나와 영삼이를 가까이에서 봤으니 누가 더 청렴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는지 잘 알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그가 남긴 ‘토사구팽’이 인구에 회자됐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정부를 폄훼하는 정책을 폈다. 박근혜 대통령은 6년간 박 전 대통령 추도식을 공식적으로 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려고 하는 이들의 행위를 ‘배신’으로 보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한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이 말로 촉발된 후폭풍은 4·13총선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싸고 영국 보수당에서 배신이 횡행했다.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희망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을 지지하며 브렉시트를 주도했다. 존슨 전 시장은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고브 장관이 “존슨은 리더십이 없다”며 총리 경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코너에 몰린 존슨 전 시장이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거듭되는 배신에 영국 국민은 헷갈리겠다.
염성덕 논설위원
[한마당-염성덕] 배신의 정치
입력 2016-07-05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