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그리움을 저장하다

입력 2016-07-05 19:28

미국에서 시작된 ‘100가지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 프로젝트’나 대지진을 겪으며 많은 소유가 무의미함을 실감하고 도서 ‘정리의 마법’이 열풍을 일으킨 일본의 이야기는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소유의 의미를 재평가하고 최소한으로 좀 더 가벼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00이라는 초극의 숫자를 지킬 자신은 없지만 더 덜어내고 심플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오랜 직장생활에 쌓여가는 것은 옷과 신발뿐이라더니 내게도 많은 정장과 구두가 쌓여 있었다. 유행도 지나고 사이즈가 맞지 않아도 내 모든 날과 함께한 것들이라서, 어떤 것은 옷에 몸이 맞춰지면 언젠가 다시 입겠다는 기약 없는 욕심 때문에 붙들고는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작별 의식을 치르고 어느 시점에 홀가분하게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정리하지 못한 것은 돌아가신 엄마의 옷이다. 건강했던 분이 위암으로 두 달 만에 돌아가시니 충격과 고통의 응어리는 풀어지지 않았고 마음에는 피 같은 눈물이 흐르는데 마치 엄마를 마음에서 지워버리는 것 같아서다. 외딸이다 보니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옷도 대부분 내가 사드린 것이라 언제 어디서 샀는지, 특별한 어느 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옷자락에서 기억이 너울너울 춤추며 되살아난다. 주방에서, 교회에서, 백화점에서, 여행길에서 함께했던 엄마의 사계절과 언어와 행동과 마음까지 담겨 있는 옷은 소통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어떻게 잘 정리할 것인가 고민이었는데, 사용하지 않으나 추억하고 싶은 것은 사진으로 남기고 정리하라는 조언에 마음의 문을 열고 묵혀둔 상처를 꺼내듯 엄마 옷을 하나하나 꺼내 사진으로 남기며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었다. 내 곁에서 없어지는 것이 못내 서운해 용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실물 그대로 사진으로 저장해 놓으니 애틋함은 더 커졌다. 소중한 것을 내려놓으며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영구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정리법 덕분이다.

김세원(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