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팬’이라는 말이 있다. 걸그룹 팬덤의 지분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30∼50대 남성 팬들을 일컫는다. 삼촌팬이라는 존재는 걸그룹 멤버들을 예능으로 적극 끌어들였다. 30∼50대 남성 방송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예능에 걸그룹 멤버 한두 명씩은 꼭 들어가는 추세가 만들어졌다.
걸그룹이 예능에서 다뤄지는 방식은 삼촌팬의 시선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예능이기 때문에 가창력이나 춤 솜씨는 문제가 안 된다. 귀엽고 예쁘고 섹시하고 털털하고 ‘연예인 삼촌팬’과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버지뻘인 남성 방송인에게 10대 걸그룹 멤버가 “오빠”라고 부르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호평을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예능이 걸그룹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늘고 있다. 걸그룹 멤버의 ‘먹방’(먹는 방송)을 전면적으로 다룬 JTBC ‘잘 먹는 소녀들’이나 Mnet의 걸그룹 육성 프로젝트 ‘프로듀스 101’ 등 본격 걸그룹 예능이 나오면서부터다.
걸그룹을 다루는 예능의 가학성
‘잘 먹는 소녀들’은 트와이스, 에이핑크, 레드벨벳, 아이오아이 등 잘 나가는 신인 걸그룹 멤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대결하는 방송이다. 김숙, 조세호, 양세형이 걸그룹 멤버들의 먹는 모습을 중계하고 방청객들의 투표로 승자를 선정한다.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주로 다루던 먹방의 TV 방송 버전인 셈이다.
지난달 29일 첫방송 직후 비난이 쇄도했다. 깡마른 몸매가 미덕인 걸그룹 멤버들에게 족발, 국물 닭발, 장어, 짜장면처럼 자극적인 음식을 ‘맛있게’ 먹도록 하는 게 가학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아무리 예능이라고 해도 ‘왜 이러는지’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무작정 먹방을 보여주면서, ‘먹는 모습이 털털하다’고 접근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잘 먹는 모습을 예쁘게 보는 삼촌팬들의 시선에서 접근한 방식의 방송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방송에서는 깡마른 10대 여자 아이돌이 시뻘건 닭발을 손으로 들고 물어뜯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한다. 자막으로 ‘닭발 먹고 섹시해진 입술’이라는 코멘트가 달리기도 했다. 먹는 모습에서 ‘걸그룹의 섹시함’을 찾아낸다. 가학적일 뿐 아니라 관음증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을 통해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걸그룹에 요구하는 것들’ 15가지를 꼽아 정리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과한 저체중의 몸, 그러나 가슴 허벅지 엉덩이는 탄탄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몸으로 모든 음식을 많이 먹고 잘 먹을 것. 편식은 절대 안 됨. 특히 아재 취향을 만족시키는 순대국, 닭발 대환영”이라고 적었다.
걸그룹 멤버 11명을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Mnet ‘프로듀스 101’도 가학성과 관음증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꿈에 도전하는 걸그룹 멤버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재미와 감동을 끌어내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이었다.
‘걸그룹=백치미’ 공식서 재미 찾는 예능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 방송된 ‘채널 A.O.A.’도 예능이 걸그룹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논란이 됐다. 이 프로그램에서 A.O.A. 멤버 지민과 설현은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못 알아보고 “긴또깡(김두한)” “이토 히로부미”라고 말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두 사람을 질책하는 여론과 함께 무책임하게 방송을 내보낸 제작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당시 제작진은 ‘재미’와 ‘현실감’을 이유로 무리한 방송 내용을 걸러내지 않았다. 예능에서 ‘무식’은 종종 ‘재미’로 연결된다. ‘아이돌은 무식하다’ 또는 ‘걸그룹의 매력은 백치미’라는 편견이 눈으로 확인되는 그 순간이 예능에서는 웃음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제작진은 그 ‘재미’를 위해 문제가 예상되는 방송을 택했다.
한 예능작가는 “걸그룹 멤버의 ‘백치미’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에는 연예인, 특히 예쁜 여자연예인을 깔보는 심리도 들어 있다고 본다. ‘예쁘면 뭐해. 역시나 무식한데’라는 식의 비아냥이 있는 거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방송을 만들면서도 그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남자 연예인의 ‘무식’도 흔하게 다뤄진다. 다만 ‘무식하지만 성공한 남자’라고 인정해주는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가학성·관음증·백치미… ‘삼촌팬’ 웃기면 OK라고?
입력 2016-07-05 19:19 수정 2016-07-15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