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노점상을 하는 67세 김모씨는 누가 봐도 여성이었다. 평소 치마 등을 즐겨 입었고 어깨까지 닿는 긴 생머리에 누구도 여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키 150㎝, 몸무게 45㎏ 정도의 왜소한 체격이어서 주변에선 ‘고운 할머니’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씨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었다. 동성애자이기도 한 그는 10대 이후 평생을 여성 행세를 하며 살아왔다. 그가 여성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은 14세 때 부모를 여읜 후부터다. 형제자매와 뿔뿔이 흩어져 혼자 산 그는 서커스단에 입단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외줄을 탔고 여장까지 했다. ‘여장(女裝)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22세 때 서커스단에서 나온 그는 고무줄이나 엿 등을 파는 노점상, 여인숙 종업원 등을 전전했다. 여장은 살인까지 불렀다.
김씨는 2008년 10월 여장을 하고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남성(당시 45세)을 자신의 방으로 유인해 유사성행위를 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 당시 자갈치시장에서 노점상을 할 때 이 남성이 자신을 괴롭힌 것이 생각나 범행한 것이다. 7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지난해 6월 출소했다.
하지만 그의 여장 살인 행각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지난달 28일 새벽 부산 동구 자신의 단칸방에서 술을 마시다 인근 부산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노숙인 박모(53)씨, 이모(45)씨와 술을 함께 마시다 자신의 집에서 한잔 더 하자고 유혹했다. 김씨를 여성으로 생각한 두 사람은 김씨가 부엌에서 안주를 만드는 사이 말다툼을 벌였다. 서로 먼저 김씨와 성관계를 하겠다고 심한 언쟁을 벌인 것이다. 보다 못한 김씨가 말렸지만 둘은 막무가내였다. 김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박씨의 가슴 등을 수십 차례나 찔렀고, 이씨도 넘어뜨린 뒤 스카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김씨의 범행은 집주인에 의해 드러났다. 집주인은 경찰에서 “김씨의 셋방에 비가 오는데도 창문이 열려 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에 사람 2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112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출동할 당시 박씨 등의 시신은 부패가 꽤 진행된 상태였다.
경찰은 집주인으로부터 정황을 듣고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경남 양산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김씨를 긴급 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 병원은 김씨가 2006년 이후 9차례나 알코올 중독 증세로 입원치료를 받았던 곳이었다. 그의 체격은 왜소하지만 서커스단에서 배운 외줄타기 등으로 손힘(악력)이 상당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박씨 등이) 나한테 욕설하고 말을 안 들어서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4일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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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한 잔 더” 8년 전 수법 그대로… 여장 동성애자, 노숙인 2명 유인 살해
입력 2016-07-0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