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기사 황모(55)씨는 지난달 8일 밤 10시50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자신이 맡아 운전하던 티볼리 승용차를 도로에 세우고 내려버렸다. 고객 신모(33·여)씨가 추가 요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운전대를 내팽개친 것이었다. 황씨는 신씨가 자꾸 목적지를 바꿔 여러 곳을 돌았다며 원래 요금의 배인 2만원을 요구했지만 신씨는 이를 거절했다.
황씨가 편도 1차로 이면도로에 세워버린 탓에 신씨의 차는 길 한가운데를 막아선 꼴이 됐다. 혼자 남겨진 신씨는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리자 직접 운전대를 잡고 인근 주차장까지 약 13m를 운전했다. 황씨는 근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경찰에 “음주운전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증거 사진까지 찍었다.
출동한 경찰이 음주 측정을 했더니 신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0.079%로 운전면허 정지 수치(0.05%)를 훌쩍 넘었다. 신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신고자가 신씨를 도로에 남겨둔 대리운전기사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신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그가 음주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황씨를 방조 혐의로 함께 입건했다.
경찰청은 지난 4월 25일부터 6월 24일까지 두 달간 음주운전사범 처벌 강화 방안을 추진해 황씨 등 음주운전 방조자 76명을 검거했다고 4일 밝혔다. 음주운전자와 방조자의 관계는 ‘친구’가 3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 동료 11명, 연인이나 부부도 10명으로 적지 않았다. 직장 상사는 3명이었고, 나머지 방조자 18명은 거래처 사람이나 대리운전기사 등이었다.
음주 사실을 알고도 자동차 열쇠를 건네는 등 뚜렷한 행위가 있는 유형 방조가 55명으로 72.4%를 차지했다. 이런 행위는 없더라도 말로써 음주운전을 적극 권하거나 독려한 무형 방조는 18명, 음주운전이 예상되는데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부작위 방조는 3명이었다.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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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요금시비’ 대리기사 앙심, 車주인 음주운전 방조 ‘죄’
입력 2016-07-0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