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목숨값’… 그마저 못받는 비정규직

입력 2016-07-04 19:00 수정 2016-07-05 00:52



위험한 건 매한가지인데

김씨의 일은 스크린도어에 매달리다시피 바짝 붙어 ‘장애물 검지장치’를 닦는 것이었다.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20㎝ 남짓으로, 전동차를 피할 틈도 없었다. 위험한 일이지만 김씨는 위험수당을 받지 못했다.

그는 세전 160만원, 세후 144만6000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위험수당은 항목도, 지급 내역도 없다. 급여명세서에는 기본급 130만원, 식대 9만원, 직책수당 5만원, 연장근로수당 8만4100원, 휴일근무수당 6900원, 연차수당 6만9000원 등이 기록돼 있을 뿐이다.

위험한 일을 하기는 매한가지인데 정규직이 받는 위험수당을 비정규직은 받지 못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4년 10월 발표한 ‘서울메트로 경정비 실태조사’ 보고서는 비정규직의 서글픈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메트로에서 경정비를 담당하는 정규직 직원은 월급 370여만원과 함께 위험수당 1만5000원을 받았다. 반면 자회사인 P사 직원은 위험수당을 받지 못했다. 식대와 각종 수당 등이 포함된 월 170만원이 통장에 꽂혔다.

전동차 바닥이나 천장에 올라가 정비를 하는 위험한 일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은 1500V 고압전류가 흐르는 차량기지에서 휴식을 취할 때가 많았다. 차량기지 내 휴게시설은 정규직만 쓸 수 있다.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2008∼2012년에 정규직 직원에게 위험수당 183억74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한수원의 하청업체 근로자는 위험수당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원자로 안에 들어가 위험한 작업을 주로 했다.

공무원도 비정규직은 차별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게도 ‘위험수당 차별’은 존재한다. 경찰, 소방관 등 공무원은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80년부터 ‘위험근무수당’을 받고 있다. 직종별로 위험도를 고려해 갑종 6만원, 을종 5만원, 병종 4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공무원과 같은 업무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위험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경기도의 한 상하수도사업소에서 하수처리 업무를 하는 정모(36)씨는 2013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무기계약직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주장이었다.

정씨는 하수처리시설 운영·관리 부서에서 공무원 24명과 함께 일했다. 같은 과에서 같은 업무를 하지만 정규직 공무원에겐 위험수당 5만원이 지급됐다. 반면 정씨와 같은 무기계약직은 위험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공무원과 달리 무기계약직에게는 지급 근거가 없다는 논리였다. 정규직 공무원들은 관리 업무를 주로 했다.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무기계약직 몫일 때가 많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지난 1월 “공무원과 동일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에게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밝혔다. 위험근무수당은 하수처리시설과 분뇨처리장 등에서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에게 보상하는 취지로 지급되는 것이라는 취지다.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인 경찰주무관 역시 경찰과 유사한 업무를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위험수당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논란이 되자 지난 4월 뒤늦게 위험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영양사가 위험수당을 받게 된 것도 지난해부터다.

‘위험 외주화’의 민낯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 발생이 많은 13개 업종을 유해·위험 업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금속가공제품 제조업, 비금속광물제품 제조업, 고무제품·플라스틱제품 제조업, 화학물질·화학제품 제조업, 반도체 제조업 등이 유해·위험 업종이다.

원청업체보다는 하청업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채 유해·위험 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위험수당은 ‘사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7년 발표한 ‘유해·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 업체 근로자 보호강화 방안’에 따르면 유해·위험한 일에 하청업체 근로자가 노출돼 있고 임금 수준마저 낮다. 하청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이유에 대해 원청업체의 40.8%, 하청업체의 25.3%가 ‘유해·위험 작업’이라고 답했다. 이어 원청업체의 28.2%, 하청업체의 32.5%는 ‘임금 수준이 낮아서’라고 답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4일 “유해·위험 업종의 작업 환경과 ‘원청-하청’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면서 “현실적인 위험을 감안해 위험수당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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