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병상의 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입력 2016-07-04 19:43 수정 2016-07-04 21:09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한순간을 말하라면 저는 성탄절 새벽송이 먼저 떠오릅니다. 12월 성탄절 전날 밤은 얼마나 춥던지요. 지금 같으면 아이들은 빠져라 할 법도 한데, 우리가 자라던 시골교회에서는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성탄절 새벽송에 참여했습니다. 밤 11시에 예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한 그릇을 먹은 후 새벽송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둠을 밝힐 등을 멋지게 준비해 점화했습니다.

교회 장로이신 아버지는 늘 새벽송의 선두주자셨고, 군대 지휘관처럼 늠름하게 인도했습니다. 교우들의 가정집 앞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먼저 오늘 본문에서 읽은 누가복음의 이 말씀을 선창했고 저희들은 다같이 암송했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 찬송을 목소리 낮추어 부르고 “메리 크리스마스!”로 마쳤습니다. 새벽송은 새벽 서너 시까지 시골 동네와 논길을 걸으며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춥고 잠이 쏟아지는 시간이었을 텐데, 우리는 춥지 않았고 눈빛은 하늘의 별처럼 초롱거렸고 성스런 예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거룩한 새벽송을 인도하셨던 그 아버지가 7년째 뇌졸중으로 누워계십니다. 7년이 되면서 모든 신체기능이 확연하게 떨어졌습니다. 음식을 삼킬 수 있는 기능까지 정지되면서 복부에 구멍을 내고 튜브로 영양식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7년은 참 지난했고 질병의 위력 앞에서 신앙이 시험받는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말에는 영양식이 역류해 급하게 응급실에 가셨고 이튿날 밤, 저는 아버지 병실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되는 고열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아버지의 목에는 두꺼운 플라스틱 용기와 가는 줄이 들고 나며 가래를 뽑는 힘든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누나를 찾고 엄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더 자주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멘.”

우리가 새벽송을 하면서 외우고 또 외웠던 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왜 그렇게 자주 하시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밤새 고열에 시달리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제 모든 치료기기를 다 뽑아버리고 고통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만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고통을 끝내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말씀만 반복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과정, 마지막 죽음의 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그리스도에게 달려있다는 고백과 절규로 들렸습니다.

아버지의 암송을 되새기는 동안 제 마음에서는 승리의 찬송과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참 의롭게 살아오셨는데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더 가까이 가는 은총도 받으셨군요.’ ‘달려갈 길 다가고 선한 싸움 마친 후 주와 함께 기쁘게…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아버지와 병상에서 보낸 하룻밤, 어린 시절 새벽송의 거룩함이 되살아났습니다. 오늘날 이 고통스런 병상에도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멘.

손은정 목사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약력=△장로회신학대학원(MDiv) △성문밖교회 담임목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