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금요일 밤이었다. 1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중심부에 위치한 레스토랑 ‘홀리 아티잔 베이커리’에는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 기간을 맞아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뒤늦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9시20분쯤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에서 총소리가 시작되면서 레스토랑은 ‘지옥’이 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소총과 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테러범 7명은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종업원들에게 모든 조명을 끄라고 지시한 뒤 검은색 천으로 CCTV를 덮어씌웠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보안군은 무장한 테러범들과 총격전을 벌였으나 레스토랑 안으로 진입하지는 못한 채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치했다. 폭탄 등으로 맞선 테러범과의 총격전 도중 경찰 2명이 숨지기도 했다.
인질극 개시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 레스토랑 지배인 수몬 레자는 “갑작스러운 소음과 함께 폭발음이 울리자 손님들이 출입문 쪽으로 달려 나가거나 테이블 아래로 숨었다”고 증언했다. 그와 일부 종업원은 테러범들이 밀려오자 건물 옥상과 뒷문을 통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부분 손님들은 인질로 잡히며 끔찍한 희생양이 됐다. 테러범들은 이들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이슬람 경전 코란을 암송하라고 요구했다. 테러 생존자의 아버지인 레자울 카림은 “(코란을) 한두 구절이라도 외운 사람은 무사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고문당하거나 사살당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테러범들은 코란 구절을 외우지 못한 이들을 따로 모아둔 뒤 혀를 자르며 고문한 반면 코란을 외운 사람들에게는 식사를 허용했다. 대부분 코란을 모르는 비(非)이슬람권 외국인들이 희생자가 됐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테러범들과 인질 석방 협상을 벌였으나 진전이 없자 2일 오전 7시40분쯤 레스토랑 진입 작전을 개시했다. 총격전 끝에 당국은 테러범 6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으며 인질 13명을 구출했다. 그러나 이미 인질 20명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진입 과정에서 경찰과 군인 20여명이 큰 부상을 입는 등 무리한 작전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방글라데시군의 나임 아슈파크 초우드리 준장은 “희생자들이 군이 진입하기에 앞서 전날 밤 살해됐다”며 “희생자 대다수가 날카로운 흉기로 잔인하게 난도질당했다”고 밝혔다. 이번 테러로 이탈리아인 9명, 일본인 7명, 미국인 1명, 인도인 1명, 방글라데시인 2명이 희생됐다. 한때 일부 외신이 희생자 가운데 한국인이 포함됐다고 보도했으나 외교부는 방글라데시 정부에 확인한 결과 한국인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테러범들의 신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모두 방글라데시인이며 그 가운데 5명은 사건 전부터 경찰의 추적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는 “종교를 믿는 이들이라면 이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없다”며 이틀간 공식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자국민 희생 소식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우리와 국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단호히 항의한다”고 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유가족과 사고수습 인력들을 3일 정부 전용기를 통해 다카 현지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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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코란 외워 보라”… 못 외는 사람들 잔혹하게 살해
입력 2016-07-0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