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난임 시술’ 비용 위해 알바 뛰는 부부들… 수십조원 쏟고도 ‘저출산’ 해결 왜 못하나

입력 2016-07-04 04:01

정모(39)씨는 편의점에서 하루 6시간씩 일한다. 3개월치 급여 300만원 정도가 모이면 산부인과를 찾아가 난임 시술을 받는다. 정부에서 난임 시술 비용을 지원해주지만 평생 네 번뿐인데 정씨는 2년 전 이미 기회를 모두 써버렸다. 김모(38)씨는 맞벌이다. 부부 2인 기준 월 소득이 583만원 이하만 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김씨는 1년에 3000만원가량을 난임 시술 비용으로 쓰고 있다. 난임가족연합회 홍성규 사무국장은 3일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시술받는 부부가 많다”며 “난임 부부들은 ‘매년 쏘나타를 1대씩 새로 뽑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김모(41)씨의 초등학생 딸은 지난해부터 급성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휴직을 하고 아내와 함께 간병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소득 한푼 없지만 김씨는 1년에 3000만원 한도의 정부 소아암 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 있는 3억원짜리 아파트 때문에 재산 기준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맞벌이 가구이거나 작은 집 한 채 있어도 탈락한다”며 “대부분 민간 보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우 부모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우리 애는 현대 딸, 저쪽 애는 삼성 아들’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1인당 5000만원 투입됐다는데

정말 아이를 낳고 싶거나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한민국은 아이 낳기도, 낳아도 기르기 힘든 나라”라고 말한다. 매년 10조원 이상 출산장려 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데 정작 꼭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심각하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저출산 예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2006년 2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14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2016년부터는 연간 20조원씩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에도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을 뜻하는 초저출산 현상이 2001년부터 15년째 지속되고 있다. 초저출산 현상을 경험했던 OECD 10개 회원국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1년 내에 이를 탈피했지만 한국만 15년째 ‘저출산의 덫’에 걸려 있다.

재원보다 정책 비효율성이 문제

재정 투입 대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 대해 정부는 사회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 등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관련 사업들이 세밀하게 맞춤형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사업 가짓수만 많았지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 가구 기저귀·조제분유 지원 사업, 자녀소득공제 등 일정 소득 기준에 맞춰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저출산을 완화시키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 못하다.

반면 난임 시술 지원 사업처럼 2014년 기준 합계출산율을 0.03명 상승시키는 효과를 본 사업은 크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내년부터 난임 시술 비용을 건강보험에 적용한다는 계획이지만 내년 10월에나 시행되는 데다 나이와 횟수 등에 제한을 둔다는 방침이어서 효과는 미지수다.

20대 국회의 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재정 부족 운운하며 새로운 사업에 미온적인 정부와 달리 20대 국회는 여야 구분 없이 저출산을 타개할 맞춤형 복지 제도를 담은 입법안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은 난임 시술 비용 세액공제율을 현행 35%에서 50%로 올리고, 공제 대상도 근로소득자에서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만16세 이하 아동 입원치료비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두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 결과 각각 연 평균 611억원, 5715억원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어린이병원비연대 이명묵 집행위원장은 “중증 어린이 환자를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건강보험 누적 흑자 17조원의 3% 정도만 투자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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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