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투혼, ‘癌 벙커’도 날리다… KLPGA 금호타이어 오픈 우승

입력 2016-07-04 04:02
이민영이 3일 중국 웨이하이포인트 골프리조트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금호타이어 여자오픈 마지막 라운드 9번홀에서 티샷을 때린 뒤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민영은 지난해 신장암을 극복한 이후 첫 승을 거뒀다. KLPGA 제공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무심코 보던 TV에서 골프경기 중계가 방송됐다. 아이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부터 골프가 너무 좋았다. 부모는 전혀 골프를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빠, 나 골프할래요. 연습장에 다니게 해주세요.”

다른 한국 여자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시작이었다. ‘골프 대디’ ‘골프 맘’들의 극성에 못이겨 선수가 되고, 어른이 돼서도 부모의 그늘을 맴돌기만 하며, 우승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골프선수의 생활에 진저리를 치는 게 보통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연습할수록 골프가 좋았고, 신이 났다.

라운드를 마친 후에도 밤늦게까지 훈련에 매달렸다. 체력을 키우겠다고 매일 줄넘기 5000개씩을 하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꼬마 소녀는 중·고교에 진학해 수없는 아마추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바로 한국여자골프(KLPGA) 이민영(24·한화)의 이야기다.

2010년 프로로 전향한 뒤 2부투어격인 KLPGA 드림투어에서 상금왕이 됐다. 이듬해 KLPGA에 데뷔해선 호쾌한 장타로 수많은 갤러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자선수들 만큼이나 ‘멀리’ 치고 ‘똑바로’ 쳤다. 2013년 11월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에는 거침이 없었다. 2014년 시즌 2승.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60.42야드로 전체 5위였다. 별명도 ‘강철 민영’이었다. 체력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민영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찾아왔다. 지난해 3월 중국에서 열린 유러피안투어 대회에 출전했을 때였다. 연습 도중 배가 너무 아파 결국 출전을 포기하고 귀국해 급히 병원을 찾았다. 한참 진료하던 의사는 그녀에게 “신장암”이라고 말했다. 믿을 수가 없어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마찬가지였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래도 이민영은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 평생 너무 좋아했고, 그걸 포기하곤 더 못살 것 같아서였다.

암 제거 수술과 회복 기간을 거쳤다. 수술은 잘 돼 몇 개월 만에 완치 판정도 받았다. 하지만 암 투병은 특유의 장타력을 이민영에게서 빼앗아갔다. 이민영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전성기 때보다 무려 30야드 가량이 줄어든 237.46야드에 불과했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었다. 특유의 연습으로 모든 걸 극복해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열린 K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이수그룹 제37회 KLPGA 챔피언십에서도 마지막 날 역전을 허용해 우승을 놓쳤지만 슬퍼하지 않았다.

이민영은 “우승하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달아난다”며 “우승을 잡으러 다니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또 “초심으로 돌아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하겠다”고도 했다. 그저 골프가 좋아 부모님을 졸라 클럽을 잡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암 극복 후 첫 승의 기쁨이 찾아왔다. 이민영은 3일 중국 웨이하이포인트 골프리조트(파72·6146야드)에서 열린 KLPGA 투어 금호타이어 여자오픈(총상금 5억원) 마지막 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쳤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03타를 기록한 이민영은 중국의 펑산산(27)을 1타차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민영이 KLPGA에서 우승한 것은 2014년 10월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이후 무려 1년 9개월 만이다. 통산 4승째.

1라운드 공동 선두에 올랐던 이민영은 2라운드에서 2타를 줄이는 데 그쳐 중간합계 9언더파 135타로 4위로 처졌다.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한 이민영은 3∼5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단독 선두에 오른 뒤 펑산산의 추격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민영의 우승으로 한국여자골프 선수는 KLPGA가 해외 단체와 공동 주관하는 대회에서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우승을 놓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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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