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러시아 TV 방송들은 일제히 한 남성의 체포 장면을 헤드라인으로 내보냈다. 으레 머리기사를 장식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중(訪中) 행보도 이 소식에 뒤로 밀렸다. 방송에는 수도 모스크바의 한 호텔 일식당에서 손에 쥔 흔적이 남도록 특수 제작된 지폐를 받았다가 체포된 니키타 벨리크 키로프 주지사의 모습이 나왔다.
자유주의 성향 러시아우파연합(СПС) 전 대표인 벨리크 주지사는 지난달 24일 뇌물 40만 유로(약 5억1200만원)를 수수한 혐의로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벨리크는 이 혐의가 미리 짜여진 각본 아래 만들어졌다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정부가 지방선거 결과로 지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러 연방보안국(FSB)을 동원, 지자체장들을 잡아들이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전했다.
러시아에서는 2004년 이래 폐지됐던 지방선거가 야당의 요구로 2014년 다시 실시됐다. 이 선거에서 푸틴이 소속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ER)은 생각했던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를 해온 푸틴으로선 거슬리는 대목이었다. 이후 지난 15개월간 부패 혐의로 러시아 정부가 체포한 지자체장은 벨리크 주지사를 포함해 3명이다. 타마르스탄 등 무슬림 세력이 강한 일부 지역은 예외이지만 기업가 출신이자 자유주의자인 벨리크 등은 즉각 표적이 됐다.
푸틴은 구 소비에트연방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 사후 대폭 축소됐던 안보기구의 권한을 다시 복구해 통치수단으로 쓰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치연구재단의 미하일 비노그라도프 회장은 “러시아 정부는 지자체장들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권력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가 바닥인 점도 크렘린이 칼을 휘두르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사정이 좋았던 2000년대 초까지 주로 돈을 들여 정치 엘리트들의 충성을 샀던 푸틴이 경기가 침체되자 ‘당근’ 대신 ‘채찍’을 들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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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석 기자
푸틴의 지자체장 길들이기
입력 2016-07-03 18:04 수정 2016-07-03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