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하게 움직이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는 여유있게 걷고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에 대한 갈망이 있다. 도심 속 고가 폐선로를 산책로로 바꿔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와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떼는 이러한 갈망을 충족시키는 좋은 사례다.
뉴욕의 명소로 떠오른 하이라인파크
지난 4월 30일 토요일 오후 하이라인파크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산책로는 줄지어 걸어가야 할 정도로 방문객이 많았다. 하이라인파크 고가에서 현지인과 인터뷰를 하던 중 우연하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대기업 총수도 바쁜 출장 중에 찾아올 만큼 하이라인파크는 뉴욕의 명소가 돼 있었다.
2009년 6월 개장한 하이라인파크는 뉴요커들이 바쁜 도시생활의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관광객에게는 ‘세계의 심장’ 뉴욕의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조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선데크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간단한 런치박스를 가져와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겐스부르트가에서 서쪽 34번가까지 이어지는 2㎞ 구간의 하이라인파크는 왼쪽으로 허드슨강의 시원한 풍광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론 맨해튼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이라인 남쪽 끝 발코니에선 육류 도축·가공이 성행했던 산업화시대 유산을 감상할 수 있고, 34번가 북쪽 끝은 허드슨강 산책로로 이어진다.
하이라인파크는 철길을 따라 기존 건물을 관통하고 아래로 차도가 내려다보이는 극장 모양의 휴식공간을 갖추고 있다. 15번가 구간에는 첼시 마켓이 있다. 벼룩시장처럼 예술작품을 팔고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가 있어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인다. 특히 이곳에서는 허드슨강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존 카레라스(50)씨는 “어렸을 때 하이라인 근처에서 살았는데 당시에는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고 철길만 있어 황량했다”며 “하이라인파크가 조성돼 산책할 수 있고 허드슨강의 풍광도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하이라인파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기존 철로에서 자연스럽게 나무와 꽃이 자라고 일부 구간은 식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도데크를 높였다. 폐차와 폐타이어로 만든 설치물, 철을 구부려 만든 조형물 등 눈길을 끄는 다양한 예술작품이 설치돼 있어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산책로에 액센트를 주고 있다. 한 켠에서는 마임 공연이 펼쳐지고 다른 곳에서는 생음악이 흐른다. 아이들이 장애물을 통과하며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뉴욕 맨해튼의 서쪽은 하이라인파크가 건설되기 전만해도 거의 100년간 대로에 공장과 창고 등 산업시설만 즐비한 부둣가였다. 특히 54번 부두는 1912년 영국 런던을 출발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이 침몰하지 않았더라면 닻을 내리고 정박했을 곳이다.
하이라인은 1934년부터 80년까지 고기와 우유, 과일 등 농산물을 뉴욕 서쪽의 냉동창고와 물류센터에 부지런히 나르던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뉴욕의 생명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80년 마지막 열차운행이 끝나고 그 자리엔 녹슨 폐선과 자갈, 무성하게 자란 잡초만 남았다. 하이라인은 그렇게 잊혀진 존재가 됐고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뉴욕시와 시민들이 협력해 재생시킨 결과 뉴욕의 명소로 거듭나게 됐다.
프랑스 연인들이 걷는 고가 산책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떼는 12구역의 고가철도 위에 지어진 산책로이자 공중정원이다. 영화 ‘비포선셋(Before Sunset)’에서 파리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만난 제시와 셀린느가 커피를 한잔하고 산책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프롬나드 플랑떼는 폐쇄된 바스티유역에서 파리 동남쪽까지 4.7㎞ 구간에 조성돼 있으며 전체 면적은 3만7000㎡에 달한다. 뛰어난 조경으로 잘 다듬어진 실내 정원의 아늑한 느낌을 준다.
프롬나드 플랑떼는 뉴욕 하이라인파크와 시카고 블루밍데일 트레일의 모티브가 된 곳이기도 하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4월 24일은 일요일 오전인데도 조깅하는 이들과 산책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가에 오른 한 할머니는 공중정원을 둘러보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자뎅 공원 위로 지나가는 구름다리는 모던한 설치예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고가 위 건물을 쪼개듯 관통하는 길은 압권이다. 하부공간은 아치형 샵으로 상업시설과 전시공간이 들어서 있다. 고가 산책로는 승강기와 계단으로 하부와 연결되고 브릿지로 주변 건물과 연계돼 접근성도 뛰어나다.
꽃이 만발한 정원과 새소리로 상쾌한 느낌을 주는 프롬나드 플랑떼는 도시 전체의 녹지 연속성을 고려한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뉴욕·파리=글·사진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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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4 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