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울어야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울어야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각자 주어진 삶의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를 지키다 보면 성도의 삶이 아닌 세상에 더 집중하며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쁨 가운데 모였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무너져 있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대단한 업적이자 축하할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 재건된 외적인 성벽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지만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달랐습니다. 외적인 성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얼마든지 잘 쌓을 수 있습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대표적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루살렘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영적으로 바로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이들이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9절). 기뻐하던 그들은 왜 울기 시작했을까요. 말씀을 통해 왜 예루살렘이 무너졌는지, 왜 자신들의 조상이 포로로 잡혀갔는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 전철을 밟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성벽은 재건했지만, 자신들이 변하지 않는 한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울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며 영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 시대를 보면서 울어야 합니다. 스스로 만든 신앙의 틀에 갇혀 외적으로 그럴듯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울고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 때, 에스라는 말합니다.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통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슬픔과 좌절로 멈추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벽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성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서 무엇이 우선인지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척도요 나침반입니다. 이것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세상에서 표류하는 난민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눈물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울게 하길 소원합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여러분의 눈물과 함께 있길 기도합니다.
오준영 목사 (원주 참행복한교회)
◇약력=△목원대 신학과 졸업 △목원대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오늘의 설교] 울어야 삽니다
입력 2016-07-03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