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그리고 외국인. 매년 성적이나 상업성에 따라 계약을 갱신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시즌 중에도 가차없이 쫓겨나는 용병. 외국인 선수는 실력을 돈으로 바꾸는 프로의 냉정한 세계 안에서도 가장 정밀하고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 존재다. 평균 이상의 연봉과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더 큰 무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30대로 접어들면서 선수인생의 후반부를 보내기 위해, 또는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한국을 선택한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는 필사의 몸부림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처절함과 간절함이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타자 짐 아두치(31·캐나다)가 그랬다.
아두치는 지난 5월 21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주관한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나타냈다. 검출된 금지약물은 옥시코돈(Oxycodon). 이 약물은 그가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다. 롯데의 대체 외국인 선수에서 중심타자로 올라선 아두치가 한 시즌 만에 ‘약쟁이’의 불명예를 안고 추락한 이유는 무지와 안일함 때문이었다.
아두치는 2014년 11월 루이스 히메네스(34·베네수엘라)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입단한 롯데에서 주전 4번 타자로 활약했다. 지난해 132경기(526타수)에서 165안타 28홈런 24도루 106타점 타율 0.314로 타석에서 맹활약했고, 외야에서도 발군의 수비를 선보였다. 그렇게 ‘20-20클럽(20홈런-20도루)’에 가입했다.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두치는 언제나 풀스윙하고 1루까지 전력으로 질주했다. 허리디스크 증세가 있었지만 아두치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했다. 롯데는 이런 아두치와 재계약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달랐다.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지난 24일까지 64경기(247타수)에서 72안타 7홈런 15도루 41타점 타율 0.291로 무난하게 활약했지만 유독 결장이 많았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아두치는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사실상 퇴출을 당한 에스밀 로저스(31·도미니카공화국)처럼 일정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내년은커녕 당장 짐을 싸고 떠날 수도 있는 비정규직 외국인인 아두치에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두치가 미국에서 처방을 받은 옥시코돈은 암 환자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복용하는 마약성 진통제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와 성격은 다르지만 엄연히 마약류인 만큼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금지약물로 지정된 이유다. 국내 도핑 전문가는 “옥시코돈이 통증완화에 매우 효과적이다. 통증으로 기량 하락을 경험한 선수가 진통제를 복용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면 경기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KADA는 ‘치료목적 사용 면책 승인’ 제도를 운영해 예외적인 약물 복용을 허용한다. 시즌 중 복용할 약물을 개막 30일 전까지 KADA에 신고하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이미 많은 선수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아두치는 이 제도에 안일하고 무지했다.
아두치는 지난 27일 KADA 청문회에 해명서를 제출해 “스테로이드나 호르몬제가 아니어서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로 상황을 뒤집기엔 너무 늦었다. 아두치는 롯데에서 퇴출됐다.
롯데는 1일 KBO로부터 프로스포츠 도핑방지 규정 9.2.2항에 따라 36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아두치의 웨이버 공시를 결정했다. 롯데도 아두치의 금지약물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지 못했다.
KBO는 “선수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구단을 추후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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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기획] ‘비정규직 외국인 타자’의 비극… 롯데 아두치 퇴출
입력 2016-07-02 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