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치 조선의 힘’ 활자가 있었다

입력 2016-07-03 19:01
정리자.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간행하기 위해 1796년 완성한 활자. 활자가 닳아 1858년에 다시 만들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7세기 제작한 활자장인 '위부인자장'.
정리자장에 끼웠던 서랍.
조선은 검박함을 미덕으로 여겼던 유교국가였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예술품을 만드는 대신, 금속활자와 이걸로 찍은 책에는 조선시대의 예술과 기술이 집약돼 있다.

전시장엔 그런 ‘문치 조선’의 집약체인 활자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길이 8m, 폭 1.5m의 비단을 길게 펼쳐 놓은 듯한 무대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활자 5만여 개가 느껍게 다가온다. 세종이 만든 조선 대표 활자 갑인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간행하기 위해 완성해 효심이 깃든 정리자, 숙종 때 명필 한구의 글씨체로 만든 한구자, 백성 사랑이 깃든 언해본에 사용된 한글 목활자…. 활자만 늘어놨으면 밋밋할 수 있을 전시가 소박한 활자장으로 인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활자를 담아 보관했던 서랍장인 활자장에는 그 많은 활자를 새로운 방식으로 분류했던 장인들의 독창성이 빛난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유교 국가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열고 있는 ‘활자의 나라 조선’전은 이렇듯 디스플레이에서 신선하다. 세계 최대 규모인 금속활자의 방대함을 눈과 가슴으로 느끼도록 한 전시 방식이 놀랍다.

세종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제왕의 지침서인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갑인자로 찍어 아침저녁으로 읽었다. 세종을 이어 조선 후기 문화 부흥을 이끈 정조는 그 대학연의에 쓰인 활자체를 살린 새로운 활자로 ‘갱장록’(羹墻錄)을 찍었다. ‘갱장록’은 중국의 순임금이 밥(갱)을 먹으면서도 담(장)을 보면서도 요임금을 떠올렸다는 중국 고사에서 연유한다. 선왕들이 남긴 교훈을 기리고 배우겠다는 정조의 마음가짐이 담겼다. 전시장엔 ‘대학연의’와 그 중 한 페이지를 재현한 식자판, 그리고 갱장록을 나란히 배치했다. 면면이 이어져 온 제왕들의 치국의 정신을 깔끔하게 시각화한 것이다.

활자를 분류해 보관하는 나무서랍장도 함께 전시돼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정조 때 만든 정리자장 서랍을 통해 당시의 독특한 활자 분류 체계를 알 수 있다. 한자의 부수는 214개나 돼 칸칸이 나눠 보관하기엔 가지 수가 많다. 그래서 부수를 단순화하고 자주 쓰는 것은 칸칸의 서랍에 두고, 그렇지 않은 것은 칸이 없는 서랍에 한꺼번에 두는 지혜가 숨겨져 있다. 서랍장 자체가 기록의 구실도 했다. 정리자장 서랍 뒷면에 1857년 주자소에 불이나 활자가 불에 녹아내렸고 이에 따라 1858년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활자장에는 이를 만든 장인이름이 적힌 경우도 있어 활자를 다뤘던 장인들의 자부심이 읽힌다. 전시는 9월 11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