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어떤 흔적을 가졌습니까?

입력 2016-07-01 20:33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이들의 희생과 수고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 갔다가 1995년 김영삼 대통령 때 세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들렀습니다. 공원 입구에는 19명의 병사들이 배낭위에 판초우의를 입고 V자 형태로 전진하는 조형물과 참전용사들의 얼굴 부조가 새겨진 화강암 벽면이 있었습니다.

한 상이 용사가 휠체어를 타고 기념공원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체중이 족히 100㎏ 나갈만한 할아버지였는데 의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가해 자유를 지켜 낸 것이 자랑스럽다”며 “대한민국에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다리를 보면서 ‘나에게 내 조국을 사랑한 흔적이 있을까, 또 주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한 흔적은 있을까’하고 자문해봤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무엇을 보여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1960년대 아이들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한센병 환자와 상이군인이었습니다. 한센병 환자는 ‘보리밭에서 아이 잡아 생간을 빼 먹는다더라’는 낭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이군인은 행패를 부리곤 했습니다. 잘려진 손목에 갈고리를 끼워서 다니는 상이군인들은 동냥을 하면서도 어찌나 당당했는지, 어른들이나 심지어 순경들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국가를 위해 싸우다 생긴 부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 말씀인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그리스도의 흔적은 옷이나 종이에 묻은 얼룩 정도가 아닙니다. 헬라어로 ‘흔적(스티그마타)’은 낙인을 말합니다. 소 떼를 가진 주인은 자기 소 떼에 낙인을 찍습니다. 오른쪽 넓적다리에 찍는데 지워지지 않습니다. 소 떼한테만 낙인을 찍은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도 낙인을 찍었습니다. 죄수 전쟁포로 노예 탈영자들에게 낙인을 찍었습니다.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신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낙인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낙인, 예수의 낙인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낙인이라는 수치스러운 말도 그리스도인의 손에 들려지면 영광스러운 말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사랑한 흔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예수의 것이라는 흔적이 있습니까. 예수 때문에 받은 고난의 흔적이 있습니까. 우리교회 권사님 한 분은 교회 일을 하다 온통 팔에 용접 자국과 칼자국, 멍든 자국이 남았습니다.

우리에게 복음 때문에 아픔을 당한 흔적,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당한 해고 등 세상 것을 다 잃어본 흔적은 오히려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비록 조롱당하고 비웃음을 당하지만 그 조롱이 바뀌어 부러움이 되고, 비웃음이 면류관의 기쁨으로 바뀔 그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내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씨를 뿌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필준 목사(홍성 광천감리교회)

약력=△경성대, 협성신대, 서울신대 대학원, 감신대 선교대학원, 웨슬리신학대학원 졸업 △현 광천기독교연합회 회장, 대전CBS 운영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