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도 3년] 대부분 ‘병약한 가족’ 돌보려 신청… 다툼 땐 ‘돈’ 화근
입력 2016-07-01 04:02
재계 서열 5위의 재벌 회장도 노환(老患)은 피할 수 없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4) 총괄회장은 현재 서울가정법원에서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받고 있다. 여동생 정숙(79)씨가 지난해 12월 “오빠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며 법원에 후견인 지정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동주·동빈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 얽히며 ‘성년후견 제도’는 덩달아 대중의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만약 후견인이 지정되면 신 총괄회장의 치매설(說)은 사실상 ‘팩트’가 되는 셈이다. 이 경우 신동주·동빈 형제는 각각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법 복지’ 제도 중 하나인 성년후견 제도가 사회·경제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게 됐다.
신청자는 자녀·배우자가 다수
서울가정법원은 ‘성년후견 제도’ 시행 3년을 맞아 후견인이 선임된 사례 1000여건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는 이날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2016년 후견사건 실무 워크숍’에서 “성년후견 제도 시행 3년이 경과한 지금 법원 실무가 제도 취지·이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성년후견 제도에 대한 논의·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성년후견 제도는 노환·질병 등으로 행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법원이 재산 행사, 치료 등을 도울 수 있는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김 판사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견인을 신청하는 사람은 자녀(38.0%)와 배우자(21.3%)가 전체의 60%로 가장 많았다. 부모가 신청하는 경우(16.4%)도 있었다. 이 경우 후견인이 필요한 사람(피후견인)이 발달장애를 앓는 경우가 절반 이상(56.7%)이었다. 신 총괄회장처럼 형제자매가 신청한 경우는 10명 중 1명(9.9%)이었다.
피후견인의 나이는 60세 이상(51.1%)이 가장 많았다. 남녀 비율은 남성(56.2%)이 여성보다 높았지만, 70세 이상 연령에서는 여성 비율이 더 높았다. 특히 피후견인이 80세 이상 90세 미만인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배 이상 많았다.
피후견인이 앓는 정신적 제약은 뇌병변(41.6%)이 가장 많았다. 치매(26.0%)와 발달장애(22.2%)가 그 다음이었다. 연령별로 40세 미만에서는 발달장애가, 40세 이상 70세 미만에서는 뇌병변이, 70세 이상에서는 치매가 가장 많았다.
다툼의 70%가 ‘돈 문제’
후견인 지정 과정에서 다툼이 벌어진 경우는 78건(약 8%)에 불과했다. 김 판사는 “후견 사건은 가족들이 대부분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어서,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분석했던 사건 중 92%는 심리 당시 다툼을 벌이거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툼이 발생한 사건은 주로 재산(69.2%)에 관한 것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다툼이 벌어진 사례의 25%는 피후견인 재산이 10억원 이상인 경우였다. 피후견인 재산이 10억원 미만인 경우 다툼이 벌어진 비율은 4.7%에 불과했다.
법원이 선임한 후견인은 친족(84.6%)이 가장 많았다. 이어 시민(공공) 후견인(8.9%), 전문가(3.1%)순이었다. 반면 다툼이 있을 경우 전문가가 후견인이 된 경우는 절반이 넘었다(56.4%). 전문가의 직업은 변호사(48.3%) 법무사(25.0%) 사회복지사(15.0%) 법무사단체(6.7%) 순이었다. 서울가정법원 전현덕 조사관은 “법원의 후견인 감독은 피후견인이 사망할 때까지 지속된다”며 “후견 감독 사건은 매년 누적돼 급격히 증가할 것이므로 적절한 절차 수립·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법원은 자신이 질병·노령을 겪게 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후견’(후견계약) 제도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현재 전국 법원의 임의후견 건수는 월평균 5∼14건에 불과하다. 법원 관계자는 “개인의 의사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점에서 ‘임의후견’이 가장 바람직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며 “임의후견 제도를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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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