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은행들이 부실 우려가 큰 기업 대출의 건전성을 최상위 등급으로 분류해 대출 부실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지적이 나왔다. 부실덩어리인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뒤늦게 여신 분류 등급을 낮추고 있는 은행들의 행태가 다른 부실기업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채무상환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 우려 큰데도 건전성 분류는 ‘정상’
한은은 30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SC제일·기업은행 등 은행 6곳의 취약업종 여신을 분석한 결과 부실 우려 기업 여신의 57∼88%가 정상으로 분류됐다”며 “부실 가능성이 높은데도 기업이 이자를 정상적으로 내면 여신 등급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한은은 이어 “이는 은행의 여신 건전성 관리가 이자 연체 발생 여부를 중시하는 사후적 관리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사후적 관리 위주 여신 관리 관행에서 차주의 미래 상환 능력까지 감안한 사전적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완전 자본잠식 기업,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간이 3년 연속 계속되면서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을 부실 우려 기업으로 봤다. 또 회계감사에서 ‘부적정’ 판정을 받아 존속 가능성이 별로 없는 기업의 여신도 72.3%가 정상으로 분류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관행은 국책은행에서 더 심하다.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이자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여전히 대우조선 여신 등급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날 열린 산업은행의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대우조선이 ‘난 이익을 냈어’라고 주장하는데 돈은 계속 마이너스였다”며 “산업은행은 ‘눈 뜬 봉사’와 다름없었고, 부실의 공모자였다”고 힐난했다.
빚낸 가구 8곳 중 1곳은 ‘한계가구’
초저금리와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가계부채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가구(1072만 가구) 중 134만2000가구(12.5%)가 ‘한계가구’로 나타났다. 한계가구는 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많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40%를 넘는 가구를 말한다. 경제 충격으로 갑자기 빚을 갚아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갖고 있는 돈이 부족해 빚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가구가 1년 만에 3만9000가구 늘었다. 가계부실위험지수 100을 넘는 부실위험 가구도 111만4000가구로 1년 전(108만2000가구)보다 3만2000가구 늘었다. 가계부채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5.6%(3월 말 기준)로 집계돼 6개월 전(140.7%)보다 4.9%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계가구와 부실위험 가구에 모두 포함된 가구를 살펴보니 소득별로는 1∼2분위의 저소득층(40%), 직종별로는 자영업자(34.2%)가 다수를 차지했다. 한은은 “향후 금리가 1% 포인트 오르는 상황을 분석한 결과 한계가구가 지금보다 9만 가구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과다부채 가구나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부실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계 소득을 늘리고 부채 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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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은행 ‘부실의 공모자’… 대출 이자만 내면 “정상”
입력 2016-07-01 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