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神이 키운 독수리… 양성우 ‘이글이글’

입력 2016-07-01 05:00
뉴시스

6월 1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와의 경기. 5-5로 팽팽히 맞서던 9회말 1사 만루에서 한화 양성우가 중견수 쪽으로 깊숙한 뜬공을 쳤다. 끝내기 희생 플라이. 야구장은 홈 팬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찼다. 선수들도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팬들의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나왔다. ‘야신(野神·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이 더그아웃을 나와 양성우에게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꼭 안아줬다. 김 감독은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다. 홈런을 치더라도 선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김 감독이 이런 제스처를 취한 것은 양성우가 팀 반등을 이끈 핵심선수이기 때문이다. 한화는 한 때 시즌 100패, 1할 승률을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런데 양성우가 두각을 나타내며 완벽히 반등에 성공했다.

양성우는 5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됐다. 당시 한화의 성적은 9승 23패로 압도적 꼴찌였다. 공동 8위 LG·KIA와의 승차가 5.5경기나 났다. 승률 0.281로 프로원년 삼미 슈퍼스타즈 이후로 34년 만에 2할 승률 팀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올해 한국 나이로 28세인 ‘중고 신인’ 양성우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이후 한화는 거짓말같이 5연승과 6연승을 거두며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이런 양성우에게는 남다른 아픔이 있다. 동국대 재학시절 차세대 리드오프로 주목을 받았지만 대학 1학년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깨수술을 받았다. 외야 수비에 필수적인 강한 어깨를 잃었다. 때문에 1년을 통째로 쉬는 등 야구를 포기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래도 몸과 마음을 추슬러 2012년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 41순위라는 낮은 순번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입단 후에도 이렇다 할 활약이 없어 군(경찰청)에 입대했지만 그 곳에서도 첫 시즌을 마친 뒤 오른쪽 손목 수술을 받았다. 두 번이나 칼을 몸에 댄 후유증 때문에 경찰청 제대 후에도 특별한 인상 없이 2군 무대인 퓨처스에만 머무르며 만년 백업선수가 됐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김재현 타격코치와 함께 열심히 훈련을 거듭했다. 양성우의 타격 폼은 상당히 어색하다. 두 번의 수술 때문에 최대한 어깨와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 잔뜩 웅크린 자세를 취한다. 양성우와 김 코치는 이런 타격 자세에서 밸런스를 바로잡는데 주력했다.

열심히 땀을 흘리자 기회가 주어졌다. 5월 들어 주전 외야수인 최진행이 부상으로 이탈한 것이다. ‘땜빵’으로 출전한 양성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5월 한 달 무려 0.379의 타율을 자랑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6월 들어 다른 팀의 집중 마크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지난 28일 넥센전에선 홈런 1개를 포함해 2타수 2안타 2타점 1사구로 팀의 13대 3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양성우는 3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코치님과 매 타석 들어갈 때마다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조언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한화 팬들도 양성우를 크게 반기고 있다. 반등의 주역일 뿐 아니라 선배 이정훈처럼 ‘악바리’ 같은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타석 당 투구수 4.1개를 기록할 정도로 공격에선 끈질긴 플레이를 하고 있다. 수비에서도 공을 잡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지난 9일 KIA전에선 ‘핏빛 투혼’도 선보였다. 당시 양성우는 3회초 수비 때 김주찬의 외야 깊숙한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슬라이딩 캐치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양성우의 왼쪽 팔뚝에는 피가 잔뜩 흘러내렸다. 그래도 위기를 막아냈다는 안도감에 그는 환히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뛰어 들어왔다.

두 차례의 수술과 만년 백업의 설움을 떨친 양성우는 이제 비상하는 독수리의 날개가 됐다. 그는 악착같은 플레이로 팀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밝혔다. 양성우는 “1군 무대에서 살아남는 게 절실하다. 매 타석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들어서고 있다”며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계속 기회를 얻고, 팀을 가을야구에 진출시키고 싶다”고 다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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