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축구 대표팀은 유로 2016 조별리그에서 1승2패에 그쳐 탈락했다. 실망한 터키 팬들은 독일 축구 대표팀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 터키 핏줄을 타고난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메수트 외질(28·183cm·76kg·아스날)이다. 정교한 패스로 ‘전차군단’의 공격을 지휘하고 있는 외질은 독일 다문화 사회통합의 중심에 서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혼란 속에 천박한 민족주의가 유로 2016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기에 그의 플레이는 더욱 돋보인다.
외질은 천재적인 패싱능력을 가진 플레이메이커다. 세련된 볼 컨트롤과 드리블, 창의적이고 예리한 패스로 공격수의 득점을 이끌어 낸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부상당한 미하엘 발락(40) 대신 공격의 핵심으로 나서 독일을 3위에 올려놓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유럽 예선에선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오르며 해결사 능력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외질은 유로 2016에서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C조 조별리그 3경기에서 도움 1개, 키패스 12개, 평균 패스 성공률 91.6%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에 오른 면모를 드러냈다. 요아힘 뢰브(56) 독일 감독은 3일 치르는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도 외질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질이 독일의 핵심선수가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그는 1988년 10월 15일 독일 서부의 겔젠키르헨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독일의 대표적인 광산촌으로 당시 많은 외국 이주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민족인 터키인이었다. 외질의 아버지 무스타파는 광부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두 살 때 독일로 이주했다.
1980년대 들어 많은 탄광이 폐광으로 변했고, 겔젠키르헨 지역에도 실업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 자란 외질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공을 차는 것이었다. 그는 집 근처에 있던 ‘원숭이 우리’라고 불린 볼품없는 동네 공원에서 축구를 하며 실력을 쌓았다.
외질은 스페인 일간지 ‘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공원에 쳐진 울타리 때문에 공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플레이가 중단될 일이 없었다”며 “내 축구 스타일이 확립된 곳이 바로 원숭이 우리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기술이 독일 유스시스템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질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다소 늦은 만 17세에 샬케 유스팀에 입단했다. 당시 그는 작고 비쩍 마른데다 수줍음이 많았으며,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샬케 유망주들의 아버지’로 불린 노어베르트 엘거트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계약했다. 2006년 여름 외질은 DFB 포칼에 선발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덕분에 1군에 안착했다. 2008-2009 시즌엔 분데스리가 28경기에 출전해 3골, 15도움을 올리며 정상급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2010년 8월∼2013년 9월)를 거쳐 아스날(2013년 9월∼현재)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외질은 터키계 이민자 출신으로서 처음으로 독일 대표팀의 문을 연 선수다. 과거 터키계 선수들은 대부분 독일이 아니라 터키를 선택했다. 터키축구협회는 외질이 독일 청소년대표팀에서 뛸 때부터 그에게 모국 대표팀 승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거절했고, 결국 2009년 2월 독일 대표팀을 선택했다. 그러자 터키 국민들은 “조국을 저버렸다”며 비난했다.
외질이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뒤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자 외질에 대한 터키인들의 반감을 사라졌고, 오히려 여론이 호전했다. 덕분에 엠레 칸(22·리버풀) 등 터키계 독일 선수들이 마음의 부담을 덜고 독일 대표팀에서 뛸 수 있게 됐다.
독일은 다문화 사회다. 국가 대표팀도 ‘순혈주의’를 버리고 이주민 출신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의 다문화 사회 통합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외질인 것이다. 외질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 터키보다 스페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난 독일-터키계 스페인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스페인계 독일-터키인인 것일까? 왜 우리는 이런 식의 제한적인 생각만 해야 하는가. 나는 축구선수로 평가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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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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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1 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