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공화국. 북극권 바로 남쪽에 위치한 대서양의 섬나라다. 7월 평균 기온이 11.2도밖에 안 된다. 국토의 79%가 빙하와 용암 지대다. 축구를 하기 힘든 험지란 뜻이다. 그래서 인구는 고작 32만여명에 불과하다. 중세시대 아이슬란드인들은 아래쪽의 영국을 수시로 침탈하는 바이킹족이었다. 조금 더 안온한 땅으로 이주해보려는 피와 눈물의 역사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얼음 공화국’이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로 2016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슬란드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를 1승2무로 통과해 이변을 예고했다. 28일(한국시간)엔 16강전에서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2대 1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이 경기를 역대 세계 축구 10대 이변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4위인 아이슬란드는 10여년 전만 해도 축구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1954년 FIFA에 가입했지만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2년엔 FIFA 랭킹이 131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의 축구 저변은 여전히 열악하다. 리그는 세미프로 수준이다. 프로라고 할 만한 선수는 1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축구 풀뿌리는 튼실하다.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 3만5000여명이 축구선수로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남자 성인은 3000여명이며 나머지는 유소년이다. 이 유소년들이 아이슬란드 축구의 힘이다.
아이슬란드는 열악한 자연환경과 나쁜 여건을 탓하며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바닥을 헤매는 자국의 축구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축구를 할 수 있는 실내 경기장을 전국에 짓기 시작한 것이다. 2002년만 해도 실내 경기장이 전국에 한 개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7개의 실내 경기장이 있고, 정식 규격의 절반 규모 실내 경기장은 23개에 달한다. 인조잔디 경기장도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도자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의 헤이마르 할그림손(49) 감독은 최근 영국 ‘데일리 레코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대표팀 선수들은 이미 10∼15년 전부터 유럽축구연맹(UEFA) A, B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코치들로부터 축구를 배운 세대”라고 전했다. 아이슬란드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뜯어고쳤다. 재능이 있든 없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해 훈련받도록 한 것이다. 발전이 느린 아이들도 포기하지 않고 충분한 기회를 줬다. 재능 있는 아이들만 걸러내 엘리트 시스템으로 키워나가는 다른 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다. 이렇게 등장한 ‘황금세대’가 바로 질피 시구드르손(스완지시티), 아론 군나르손(카디프시티), 콜베인 시그도르손(아약스) 등이다.
유로 대회에 처음 출전해 ‘승점 자판기’ 취급을 당하던 아이슬란드는 이제 무서운 ‘다크호스’가 됐다. 7월 4일 아이슬란드가 8강전에서 맞붙을 상대는 이번 대회 개최국이자 우승 후보인 프랑스다. 겨울 왕국의 ‘축구 동화’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관련뉴스]
☞
☞
☞
☞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얼음왕국’ 아이슬란드의 어린 다윗들
입력 2016-07-02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