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자율협약의 늪

입력 2016-06-30 19:18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급소를 겨누고 있다. 검찰은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의 재임 기간(2012∼2015년)에 자행된 수조원대 분식회계를 적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남상태 전 사장 때(2006∼2012년)의 분식회계 의혹과 산은 책임도 강도 높게 수사할 방침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미몽에 빠져 국고를 쏟아부은 정부와 금융권, 혈세를 쌈짓돈처럼 남용한 대우조선의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검찰은 정부-금융권-대우조선의 부패 고리를 찾아내 엄벌해야 마땅하다.

대우조선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금융권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 기업이 부실화하면 정부는 금융권에 자금 지원을 지시하고, 돈을 투입한 금융권은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이란 미명 아래 빚잔치를 되풀이했다. 간섭을 받지 않고 채권단 책임으로 기업을 살리겠다는 자율협약. 말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기업에 대한 자율협약 진행과정은 종종 부총리,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산은 총재 등이 참석하는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다. 산은 총재는 결정권이 없고 정부 결정을 집행할 뿐이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 투입을 결정했고, 산은은 실행하는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자율협약이 아니라 타율협약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서별관회의의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서 “서별관회의 자료와 참석자를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거부했다. 서별관회의 멤버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서별관회의는 관계부처의 비공식적 협의과정이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 회의록은 없고 각 기관에서 가져온 자료는 있지만 지금껏 공개한 적이 없었다”며 버텼다.

자율협약이든, 타율협약이든 결과만 좋으면 별로 문제를 삼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구조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자율협약이 성공한 예가 별로 없다. 대우조선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을 비롯해 부실기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 체질 개선은커녕 연명만 시켜 왔을 뿐이다.

자율협약이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무능·무책임·회계사기, 경제보다는 정치 논리로 접근한 정부와 정치권, 채권단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전문성 결여, 기업의 감시 역할을 해야 할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 등이 뒤엉키면서 조선·해운업체와 금융권의 부채를 눈덩이처럼 늘렸다. 자율협약이 타율협약을 넘어 부실협약으로 전락했는데도 자율협약의 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실례를 들어보자. 산은을 포함한 채권단이 4조5000억원을 투입한 STX조선은 자율협약을 거쳐 법정관리로 가고 말았다. 하지만 같은 그룹이면서 산은 관리 하에 남지 않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팬오션은 하림그룹에 인수되면서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팬오션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흑자를 내며 순항하고 있다. ‘백해무익’한 자율협약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최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 역할은 ‘돈 퍼붓기’가 아니라 시장에서 스스로 구조조정을 할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정부와 국책은행, 기업의 한국판 ‘철의 삼각동맹’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에 국한해 청문회를 해서는 안 된다. 대우조선의 부실 문제는 1999년 8월부터 불거졌다. 역대 정권의 실책을 파헤쳐 책임을 묻고, 그 연장선상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