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손드하임(86)은 ‘미국 뮤지컬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작곡가 겸 작사가다. 선율을 중시하는 기존 뮤지컬과 달리 드라마와 음악을 대등하게 활용한 독특한 형식으로 그는 뮤지컬계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평론가나 창작자들에게 존경받을지 몰라도 그의 작품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쌔신(2005·2013)’ ‘스위니 토드’(2007)’ ‘컴퍼니(2008)’가 무대에 올랐지만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흥행 실적은 매번 저조했다. 드라마는 낯설고 노래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오른 ‘스위니 토드’(6월 21일∼10월 3일 샤롯데씨어터)는 흥행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내 최고 남녀 뮤지컬배우로 조승우와 옥주현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부터 예상된 결과이긴 하다.
‘스위니 토드’는 탐욕스런 판사 때문에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15년간 억울하게 유배를 당했던 이발사 벤자민 바커의 잔혹한 복수를 다룬 작품이다.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꾼 이발사는 돈밖에 모르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파이 가게 여주인 러빗 부인과 함께 복수라는 이름 아래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쉴 새 없이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이 작품은 천연덕스런 유머가 번뜩이는 블랙 코미디인 것이 특징이다. 또한 광기어린 스위니 토드와 사악한 러빗 부인은 단순한 선악구도로 나누기 어렵다.
스위니 토드 역의 조승우는 무대 위에서 ‘명불허전’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특히 정확한 딕션으로 대사와 가사가 매우 중요한 손드하임 작품에 걸맞는 연기력을 뽐냈다. 노래에선 고음 부분에서 1∼2곳 정도 음정이 약간 흔들리기도 했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조승우는 2012년 ‘닥터 지바고’ 이후 지난 4년간 ‘헤드윅’ ‘지킬 앤 하이드’ ‘라만차의 사나이’ 등의 재공연 무대에만 서 왔다. 이번 작품에선 신작이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더해져 관극의 재미를 한층 느끼게 해줬다.
옥주현 역시 ‘엘리자벳’ ‘마타하리’ ‘레베카’ 등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내던 기존 역할과 달리 탐욕스런 러빗 부인 역할을 맡아 망가진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걸쭉한 입담까지 여유있게 소화해내며 웃음을 줬다.
이번 ‘스위니 토드’에선 조승우와 옥주현 외에 또다른 남녀 주역으로 양준모와 전미도가 캐스팅 됐다. 양준모는 ‘스위니 토드’ 국내 초연 당시 류정한과 함께 타이틀롤을 맡았었고, 전미도는 남자배우들이 누구든 최고의 호흡을 선보이는 여배우로 꼽힌다. 각각의 조합에 따라 배우들의 애드리브가 달라지는 등 작품의 맛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 3층으로 된 백색의 단순한 무대세트는 아쉬운 부분이다. 배우들에게 집중시키는 장점은 있지만 볼거리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에겐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손드하임 작품에서는 극의 해설자 역할을 하는 앙상블이 중요한데,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딕션의 문제인지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론적으로 ‘스위니 토드’가 스타 캐스팅 없이 작품의 힘만으로 앞으로도 국내에서 흥행에서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공연 리뷰-뮤지컬 ‘스위니 토드’] 이발사의 잔혹한 복수… 광기어린 조승우 빛났다
입력 2016-06-30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