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퍽 부정적이다. 기사에 붙은 댓글을 읽다보면 내용에 대한 비판을 넘어 원색적인 비난으로 치닫는다. 은근슬쩍 특정 계층이나 지역을 비하하는 뉘앙스를 담은 글도 넘쳐난다. 익명 뒤에 숨어 있는 혐오는 필연처럼 과장으로 이어지고 단어 선택도 극단적이다. 댓글만 보노라면 이 사회가 제대로 된 건가 싶기까지 하다.
여론의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듯한 의심이 들 만한 댓글도 많다. 개인의 일탈이나 치기 수준을 넘어 사회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을 경험했던 국민 입장에서 보면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댓글전쟁’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을 묘사한 기사로 읽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 언론이면서 경쟁관계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댓글 소통을 위해 손을 잡았다. 두 회사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와 함께 온라인 충성 독자층과의 소통을 위한 ‘코랄 프로젝트(Coral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홈페이지에서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악성 댓글을 삭제하고 좋은 댓글이 강조될 수 있도록 알고리즘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한편 에디터가 직접 독자 댓글 코너도 운영한다고 한다. 독자들이 댓글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정보를 뉴스로 재배포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독자들의 댓글을 콘텐츠 제작 과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충성도 높은 독자를 확보해 수익으로 연결하겠다는 측면도 있지만 독자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콘텐츠를 만들려는 시도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꽤 많은 언론이 독자 반응을 바탕으로 지면을 제작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매트 머레이 편집장은 6월 중순 세계편집인포럼(WEF)에 참석해 “우선 모바일에 기사를 올리고 반응을 본 뒤 페이지뷰를 많이 기록한 기사를 중심으로 보다 심층적인 기사를 (지면에) 싣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제309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인 팀 후배 박효진 기자의 ‘생리대 살 돈 없어 신발 깔창, 휴지로 버텨내는 소녀들의 눈물’ 기사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최초 보도는 5월 26일 온라인을 통해 이뤄졌지만 고백하건대 이 기사가 이 정도의 반향을 몰고 올 줄은 몰랐다. 기사가 유통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보고서야, 기사에 달린 독자들의 댓글을 보고서야 가치를 절감했다.
국민일보 지면에는 온라인에서 보도된 지 나흘 후에 실렸다. 독자들의 댓글이 이 기사를 국민일보 5월 30일자 1면에 배치하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기사는 취재 자체도 댓글에서부터 시작됐다.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인상한다는 기사에 달린 ‘저소득층 소녀들은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 휴지, 신문지로 버틴다’는 댓글을 본 뒤 박 기자는 취재에 나섰다.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정부와 지자체, 언론의 관심 밖에 있었던 문제가 댓글이란 단초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그동안 꽤 많은 기자들의 특종기나 기자상 수상 소감에 단골처럼 등장했던 소재는 휴지통이었다. 휴지통을 뒤져 찾아낸 단어 하나로 많은 비리와 사회문제가 고발됐다. ‘깔창 생리대’ 기사도 대다수가 쓰레기로 취급되는 댓글 사이에서 찾아낸 보물이다. 어쩌면 특종이란 놈은 무언가 냄새나는 것들 사이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온라인팀 차장 shjung@kmib.co.kr
[세상만사-정승훈] 모든 건 댓글에서 시작됐다
입력 2016-06-30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