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길 <15> 수갑 차고 이동하면서 ‘가시면류관 예수님’ 묵상

입력 2016-06-30 17:13 수정 2016-06-30 21:04
김영길 장로가 2009년 한동대 효암채플에서 ‘한동의 종소리’를 함께 부르고 있다.

“총장님, 최근 탈옥수 사건 때문에 수갑을 두 개씩 채워야 하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경주구치소를 떠나 대구로 향하는 철창버스 안에서 호송교도관이 말했다. 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신 예수님을 묵상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피조물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다니 얼마나 억울하고 외로우셨을까. 죄인인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가시면류관을 쓰고 조롱과 채찍을 받으며 고통 당하셨는데, 죄인인 나는 교도관의 위로까지 받으며 편안히 버스를 타고 가는구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만 흘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대구에서는 구치소가 아닌 기결수들이 있는 독방에 수감됐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도 묵상했다. 아내가 보내준 복음성가를 한 장, 한 장 차례로 부르다가 ‘사랑의 종소리’(한동대 학부모 김석균 작사·작곡)를 ‘한동의 종소리’로 개사해 불렀다. 언젠가 출소하면 한동대 채플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이 찬양을 부르고 싶었다. “주께 두 손 모아 비나니 크신 은총 베푸사, 주가 예비하신 한동대 크게 사용하소서….”

나는 그 감방 안에서 평생 정직함과 일용할 양식만 구했던 아굴의 기도를 깊이 묵상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7∼9)

한동대는 개교할 때부터 가난하게 태어나 재정적 궁핍함을 끊임없이 겪고 있었다. 한동대의 재정은 지금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물론 학생 수를 늘리면 학교 재정 형편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학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교수와 학생 간의 멘토링, 양질의 전인교육을 위한 정예부대로 만들기 위해 정원을 최소화했다.

한동대가 하나님의 대학으로 뿌리 내릴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가난과 환난을 통해서였다. 한동대는 고난의 위대함과 유익함이 있는 대학이 분명하다. 지독한 가난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의 대학에 이렇게 돈이 없는 것이 더 큰 기적”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한동대가 가난하다면, 학교의 장래는 분명 소망이 있는 것이다. 사람과 돈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학교를 이끌어 가실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실제로 학교 후원회인 ‘갈대 상자’ 회원들을 통해 재정을 공급하셨다. 우리는 이를 수없이 경험했다.

나는 53일간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가 2001년 7월 4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해 12월 28일, 대구고등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중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일부 혐의에만 벌금형을 선고했으며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재판은 종결됐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