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 소설가 정유정] “인간 내면의 야수가 눈뜰 때 내 소설도 시작됩니다”

입력 2016-06-30 17:23
작가 정유정이 28일 서울 마포구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신작 ‘종의 기원’은 논란이 클 것이라 예상했고 두려웠다. 압박을 받고 사는 게 작가이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그걸 이겨내야 한다”며 “그럴 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독자다. 저를 기다리는 독자들에게서 힘을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정유정(50)은 한국문단에서 돌출된 작가다. 간호대 졸업 후 간호사로 5년, 공기업 직원으로 9년을 일했다.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돌연 안정된 직장을 그만뒀다. 정식 문학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 철저히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공모전에 11번 떨어지고 6년 만에 작가가 됐다. 41세였다. 그런데 내는 책마다 잘 팔린다. 장편소설 ‘7년의 밤’이 40만부, ‘28’은 20만부가 팔렸고, 신작 ‘종의 기원’은 출간 한 달 만에 11만부를 넘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과 함께 여성작가 두 명이 베스트셀러 1, 2위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죽었다는 시대에 이례적인 일이다. ‘정유정 현상’이라 불릴 만큼 강렬하다. 수많은 이름 있는 작가들, 명망 있는 상을 받은 작가들이 못 해낸 일을 정유정이 했다. 궁금했다. 대중에게 읽히는 소설을 쓰는 그의 힘은 무엇인지. 28일 서울 마포구 홍대 앞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소설을 새로 낼 때마다 대중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정유정 현상’의 핵심이 뭐라고 보는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문학으로부터 이야기를 거세시킨 측면이 있다. 이야기를 빼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문학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철학도 중요하고, 성찰도 중요하고, 문장의 미학성도 중요하다. 그건 작가들마다 선택하는 것이다. 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없었기 때문에 제 소설이 읽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본인과 비슷하게 이야기를 추구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비슷한 포지션의 작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야기로 보자면 천명관 작가가 굉장히 뛰어나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요즘 작가로는 조영주씨를 눈여겨보게 된다. 추리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유정의 소설은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글이 굉장히 잘 읽힌다.

“감각적인 묘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오감에다 폭탄을 터트린다. 눈, 귀, 코, 입은 물론 피부까지 다 느낄 수 있도록 오감에 총공세를 퍼붓는다. ‘그냥 느끼면 돼, 생각할 필요 없어’ 이런 식이다. 특히 시각적 묘사를 중요시한다.”

-문장을 만들 때 고려하는 부분은.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쓴다. 독자들은 왜 자꾸 어두운 얘기를 쓰느냐고 하는데 무엇을 쓸 것인가는 작가의 선택이고 독자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는 신경을 되게 많이 쓴다. 그게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가장 정확한 문장, 가장 간단한 문장을 찾으려고 애쓴다. 읽으면 바로 그림이 그려지는 문장, 애매하지 않은 문장을 찾는다. 문장을 짧게 쓰고 접속사도 안 쓰기 때문에 문장과 문장 사이의 리듬에 대해서도 무척 고민해야 한다.”

-정유정 소설은 주제나 스타일 때문에 추리소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추리소설의 목적이란 게 범인 찾기이고, 지적 게임이다. 저는 추리소설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제 소설은 전부 스릴러다. 스릴러의 목적은 생존 게임이고, 살아남기다. 바깥에서 덮쳐오는 운명의 폭력성에 맞서고 살아남는 이야기들. 제 소설은 3분이 1만 읽으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범인을 숨기지 않는다. 독자들의 생각이 범인이 누굴까에 쏠리는 게 싫다. 인물을 따라가며 감정을 이입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래서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걸 좋아한다.”

-왜 어두운 이야기만 쓰는가. 심지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다.

“작가마다 자기 테마가 있다. 헤밍웨이는 죽음이 테마였고, 스티븐 킹은 인간 심연의 공포를 쓴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이 많다. 인간은 이중적 존재이고, 내면에 다양한 세계를 갖고 있다. 선, 이타심, 사랑, 희생정신 등 밝은 면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 저는 그쪽이 아닌 거다. 인간의 심연에 어두운 숲이 있고, 그 숲 안에 증오, 혐오, 폭력, 욕망 등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들이 잠들어 있다. 그 야수들이 눈을 뜨고 숲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비극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야수 같은 감정들을 외면하거나 떨쳐내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어두운 감정들을 주시하면서 소설로 그려내는 것이다.”

-당신의 소설적 주제를 ‘악에 대한 탐구’로 규정하는 이들이 많다. 동의하는가.

“내 소설의 주제는 늘 살아남기, 생존이었다. 평온한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드는 운명의 폭력 앞에서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하려고 했다. 내가 악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비극, 재난, 불운 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 가혹하고 불가해한 운명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나, 이런 걸 소설로 모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굉장히 희망적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영웅은 아니고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고군분투한다. 이게 바로 리얼리즘이고, 인간의 존엄성이며, 희망이고 또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집필 과정도 궁금하다.

“소설을 끝내기 한 달 전쯤이면 보통 다음 작품의 시놉시스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소설을 출간하고 한두 달 이런 저런 행사를 치른 뒤 광주(광역시)의 집에 틀어박혀 다음 작품을 시작한다. 보통 6개월 정도 이론적인 공부를 한다. 자료와 논문을 찾아보고 전문가 취재도 하고. 초고는 늘 노트에 쓰는데 석 달 안에 끝낸다. 초고를 쓰고 나면 모자란 공부가 나온다. 2차로 취재와 공부를 한다.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가는 건 그 다음이다. 써놓고 맘에 안 들면 이야기를 부수고 다시 쓴다. ‘종의 기원’은 세 번 이야기를 허물었다.”

-다음 작품 구상도 끝났나.

“그렇다. 곧 시작할 것이다. 아마도 재난물이 될 것 같다.”

-영화 얘기도 해보자. ‘7년의 밤’ 촬영이 마무리됐다. 배우 장동건이 오영제 역을 맡았는데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장동건씨가 배역에 매우 의욕적이었고,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고 전해 들었다. 예쁜 사람들이 사악한 행동을 하면 더 사악해 보이고 더 무섭다. 아마도 그런 효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내 심장을 쏴라’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화됐다. 이번 ‘종의 기원’도 벌써 영화 판권 계약이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다.

“곧 계약이 될 거로 안다. ‘7년의 밤’은 출간과 동시에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이 쏟아졌고, 15개 제작사가 입찰에 참여해 결국 CJ가 판권을 가지게 됐다.”

-한강 작가와 둘이서 요즘 한국소설의 붐을 이끌고 있다. 한강의 소설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강 작가를 읽으면 한없이 문학적일 수 있고,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을 즐길 수 있다. 나는 그 반대편에 있는 작가다. 독자들에겐 골라먹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한강과 나의 공통점이라면 삶의 폭력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유정은 1966년 전남 함평 출생. 광주광역시 기독간호대학교 졸업 후 간호사로 일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도 근무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5000만원 고료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1억원 고료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이 있다.

한승주 문화팀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