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의 제안-더 나은 노년]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위한 선택

입력 2016-07-03 18:52
한설희 신경과 교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설법하는 생로병사는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네 가지의 고통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말한다. 그런데 인간의 긴 역사 속에서 큰 변화 없이 유지되던 이 생로병사의 패러다임이 불과 지난 수 십 년 사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일찍이 인류사에 없던 ‘노(老)’의 고통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과 한 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人生七十古來稀’ 즉 ‘예로부터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구절이 실감이 났었으며 ‘나이 많음’ 자체가 존경을 받는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인구의 고령화는 이제 더 이상 선진국 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며 전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고령화 속도가 유별나게 빨라진 우리나라에서는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의 인구 의학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매 3년이 경과할 때마다 수명이 1년 가까이 늘어난다고 한다. 인생 100세 시대,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으며 이제 누구나 조금만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쓰고 산다면 100세 수명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노인이 되는 나이를 65세로 정하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60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한 사람을 ‘젊은이’라 부르는 반면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을 ‘노인’, ’노인네’라 지칭한다. 우리말에 ‘젊다’라는 단어의 품사는 형용사이다. 그러나 ‘늙다’는 동사이다. 시쳇말로 한 끗 차이인데 ‘젊다’와 ‘늙다’는 진실로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며 젊어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젊는다’라는 구절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그저 ‘우리는 늙는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는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숫자상의 나이 또는 연대기적 나이(chronological age)와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 사이에 점차 커다란 간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중년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 70 대 80대 노인을 찾기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니 노인의 기준을 70세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나 100세 이상의 질병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실버’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평생직장에서 퇴직하여 연금이나 퇴직금에 의존하여 생활하거나 자녀들이 주는 용돈으로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고령자들의 신체적 건강 수준도 젊은 시절 못지않게 유지되면서 적극적 사회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기존의 실버 세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성향인데 ‘뉴 실버 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시니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는데 원래는 50세 이상의 중장년층을 일컫는 말로 ‘연장자’라는 뜻을 가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의 노인을 지칭하며 ‘실버’라는 용어를 대체해 가고 있다. 노인이 되었든 실버세대가 되었든 아니면 시니어가 되었든 같은 노인을 이야기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나 ‘어르신’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급속히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정치, 경제를 포함한 문화가 고령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어 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사회학자들은 ‘시니어 쉬프트(senior shift)’라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한다.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인구의 고령화가 부지불식간에 바로 우리의 커다란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수동적으로 ‘늙어감’을 한탄하며 현실 사회에서 소외되어가는 그저 그런 노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시니어 시프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세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호모 헌드레드의 시대에 능동적인 삶(active life)으로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eing)를 맞이할 준비를 할 때이다.

한설희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