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약개발 열풍을 보면 죽다가 살아났다는 느낌입니다. 25년 간 회사에 몸담고 한 우물만을 파서 혁신신약(혈우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김훈택 SK케미칼 혁신R&D센터장은 신약개발 성공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소회를 묻자 “신약개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끈기 있게 하다보면 반드시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1990년대 SK케미칼에 입사해 국내 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주 개발 일원이자,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혈우병 치료제(NBP601)를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NBP601은 올 여름 미국 시장에 ‘앱스틸라’라는 이름으로 출시된다. 앱스틸라는 혈우병 환자의 80%에 해당하는 A형 혈우병 치료제다. A형 혈우병은 근육·관절·장기에서 일어난 출혈이 쉽게 멎지 않는 병으로 미국 남성 6000명 중 1명 꼴로 이 질환을 갖고 태어난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바이오의약품 중 복제약(바이오시밀러)이 아닌 바이오 신약이 FDA를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케미칼은 인내와 끈기로 혈우병 치료제 개발을 이끌었다. 김 센터장은 “2000년도에 나를 포함해 2명의 연구자가 처음 개발을 시작했다. 총 8명의 핵심 연구인력이 투입돼 16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좋은 성과를 냈다”며 “일본 다케다제약이 2003년 당시에 연구 인력이 150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다. 많은 연구자가 있다고 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결국 경쟁력 있는 핵심 소수 인력이 혁신신약을 개발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이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차별화 된 기술력이 선결조건이다. 김 센터장은 “혁신신약으로 인정을 받고 특허 등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규성’이 입증돼야 하고, ‘기술적 우위성’이 있어야 한다”며 “NBP601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한 신약”이라고 평가했다.
SK케미칼은 2009년 세계 3대 혈우병치료제 제약사 호주 CSL에 NBP601을 기술 수출했다. 이후 CSL과 유럽·미국 등에서 글로벌 임상을 실시해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회사는 100억원 가량을 투입했고 기술수출(Licensing out) 이후 CSL에서 수천억원 단위의 투자를 진행했다.
“CSL홈페이지를 접속해보면 혈우병치료제가 최우선 순위로 등록돼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에 원천 기술을 수출해 상업화에 성공한 것은 우리가 최초입니다. CSL사를 만나 아기(혈우병치료제)를 성인으로 만들어줘서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CSL과의 기술수출 계약 체결 과정에 대해 그는 “2008년 바이오USA의 미국 파트너링 행사에서 호주 기업이 먼저 관심을 보여 SK케미칼 문을 두드렸다. 그 뒤 계약은 순조롭게 성사됐다”며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혈우병 치료제’ 개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으나, 글로벌 회사는 우리가 개발한 치료제에 대한 확신을 갖고 파트너링을 맺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NBP601이 우리나라 돈으로 1조1500억원 매출 규모의 블록버스터 약물이 되길 원한다. 마케팅은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기보다 글로벌 제약기업과 함께 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마케팅까지 우리 힘으로 해야 신약 강국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은 CSL의 앱스틸라 매출액의 5∼7%를 로열티 수입으로 받을 전망이다.
신약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과 관련 김 센터장은 “전자와 자동차는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받으며 장치산업으로 성장해 왔다. 이제는 생명과학분야, 제약분야에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일본이나 스위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탑 50위 안에 드는 제약사들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남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서는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난치성 질환 등 치료제가 없어 고통받는 환자를 위해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국가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인적, 지적 능력은 세계 어딜 가나 뒤지지 않는데, 환경 때문에 지속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라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셀트리온과 삼성 역시 최근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투자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결국 가야 할 길은 ‘신약개발’”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신약개발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돼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난관도 많았다. 김훈택 센터장은 “막힌 걸 해내는 게 책임자다. 그러나 그걸 믿고 지원하는 것이 오너의 힘이다. 신약개발에서 오너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그래서이다. 리더가 흔들리면 구성원들도 다 흔들린다. 끝까지 그걸 이겨낼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경쟁 환경 파악, 경영층과의 소통 등이 조화돼야 한다. 같이 동고동락한 팀원들과 뜻이 맞으면 잘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약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지원도 뒷받침 돼야 한다. 그는 “정책 입안자들이 신약개발에 힘을 쏟는 제약사들에 대해 약가나 세제혜택, 임상비 등의 지원책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술 수출에 성공했을 때 세금을 감면 해주는 등의 장려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혁신 R&D 센터에서는 유전병, 희귀질환 등의 영역에서 4개 정도의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있다. 그는 “혁신 R&D센터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별적 우위’가 있고 기존에 개발되지 않은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명품(名品)’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신약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지속적으로 한 우물을 파는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그런 사람들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SK케미칼은 백신, 혈액제 등 다양한 바이오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매출의 12∼15% 수준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문인력 확보와 국내외 유수 R&D네트워크 강화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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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강국 현장을 가다] SK케미칼 김훈택 혁신R&D센터장, 바이오 신약 FDA 통과1호…비결은 인내와 끈기
입력 2016-07-03 19:20 수정 2016-07-04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