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안 받고 피하면 일이 더 커지네, 연락 주게나.’ 지난해 말 고모(54)씨는 아내와 내연관계인 남성에게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불륜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 남성이 전화를 계속 피했기 때문이다. 응답이 없자 고씨는 비슷한 문자메시지를 12차례 더 보냈다. 그러다 지난 1월 정보통신망법 위반(불안감 유발 문자 등) 혐의로 벌금 7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아내의 내연남에게 공포·불안감을 줬다는 이유였다. 고씨는 “억울하다”며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사건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9단독 이주연 판사는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들어볼 만한 사건”이라며 지난해 4월 고씨에게 국민참여재판을 권유했다. 고씨가 동의하자 사건은 판사 3명이 심리하는 합의부로 재배당됐다. 두 차례에 걸쳐 12시간 동안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끝에 고씨는 ‘무죄’를 받았다. 배심원들은 “내연남이 공포나 불안감을 느낄 내용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정민)는 배심원들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법원이 이른바 ‘생활밀착형 사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고 있다. 교통사고 단순폭행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 주된 대상이다.
고씨처럼 단독재판부 사건이라도 본인이 희망하면 합의부로 이관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당시 법정에서 문자메시지가 공포·불안감을 유발했는지를 놓고 배심원들 의견도 팽팽하게 대립했다”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활형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이 활용되도록 제도적·물적 지원을 늘리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또한 하반기부터 식당 영업정지 처분 등 서민 생계와 밀착된 ‘행정 사건’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 서울행정법원은 다음 달부터 식당·노래방 등의 영업정지 처분, 자동차운전면허 취소 처분, 과징금 부과 등을 ‘서민 생계형 행정 사건’으로 분류해 신속 처리키로 했다. 대신 분쟁도가 높은 사건은 생계형 사건 처리 후 남은 시간을 집중해 충실한 심리를 거치도록 차별화한다.
통상 행정 사건은 사건 접수부터 첫 재판까지 100여일이 걸린다. 소장(訴狀) 송달, 답변서 제출, 기일 통지 등에 물리적 시간이 필요해서다. 앞서 배당된 사건들과 일정도 조율해야 한다. 법원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의 사건 8000여건 중 862건(약 11%)이 ‘영업정지·허가취소 처분’ 등 생계형 사건이었다”며 “특히 ‘면허취소 처분’ 사건은 법원이 최대한 빨리 처리해도 당사자들은 생계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재판 기간을 줄이기 위해 생계형 사건은 서류제출 등을 기다리지 않고 조기에 재판기일을 잡기로 했다. 대부분 사건이 변호인 없는 ‘나 홀로 소송’임을 감안해 행정처분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서 진술하는 ‘당사자 심문’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법원 관계자는 “궁극적 목표는 사건을 1심에서 끝내 서민들이 생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처분 감경 사건은 법원이 적극적으로 행정청에 취소, 재처분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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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획] 아내의 내연남에 협박성 문자 보낸 남편… 국민 판단은?
입력 2016-06-3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