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믿음의 기도

입력 2016-06-29 17:25

바디메오는 볼 수 없었기에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종일 구걸해서 얻는 돈이나 음식으로 삶을 연명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하대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을 낮춰 부를 때 ‘김씨’ ‘이씨’ 하는 것처럼,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바디메오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바디메오의 인생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N포세대(주거·취업·결혼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청년세대)’처럼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며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예수님을 만나면 나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도 보게 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과 일치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어느 날 바디메오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여리고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다는 소식을 들은 바디메오는 소리지르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시끄러웠는지 헬라어 성경은 ‘크레제인’ 즉 까마귀의 거친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단어로 묘사합니다. 그렇게 거칠고 사나운 바디메오의 소리는 당연히 사람들의 귀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핀잔과 함께 “잠잠하라”는 경고가 들려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메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지릅니다. 그의 소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울부짖음은 결국 예수님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지체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은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사역을 완성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중요한 일을 멈추고 바디메오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 역시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바디메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겉옷을 내버려야 했습니다. 그는 겉옷을 벗어놓고 그 위에 앉아서 구걸을 했기에, 겉옷은 그의 경제활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은 겉옷을 포기하면서 주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 결과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것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인생의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믿음의 기도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 생존을 포기할 정도의 과감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 믿음의 기도가 우리의 영혼과 인생을 구원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민구 목사 (경기 광주 포도원교회)

◇약력=△서울신대 신학과 졸업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대학원 신학석사(T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