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교 기계공학과 4학년 이모(25)씨는 최근 ‘공학교육인증(ABEEK)’을 포기했다. 공학인증을 마치려면 한 학기를 추가로 다니면서 두 과목을 더 수강해야 했다. 그 시간에 자기소개서를 한 번이라도 고쳐 쓰는 게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았다. 이씨는 28일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원서를 넣었는데, 대부분 기업은 공학인증 취득 여부조차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취업에 도움 안 되는데…
공학교육인증제란 인증된 커리큘럼을 수료한 공학 전공자에 대해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이 ‘실무에 효과적으로 종사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보장하는 제도다. 공학인증을 받으면 졸업증명서 학위명에 ‘○○공학’ 대신 ‘○○공학심화’라고 표기된다. 일종의 자격증인 셈이다.
공학인증의 실효성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학을 전공한 취업준비생을 중심으로 공학인증이 실무는 물론 취업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공학인증은 2000년 도입된 뒤 잦은 비판을 받아왔다. 지정된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 탓에 수업 선택권을 침해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신입생에게 공학인증 취득을 강요하기도 했다. 교수의 허가 없이 공학인증을 포기하지도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공학인증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대학가에선 공학인증이 사라지는 추세다. 서강대는 지난해 컴퓨터공학과를 제외한 공학부 모든 학과의 공학인증을 폐지했다. 서강대 공학부 관계자는 “공학인증에 드는 유무형의 노력에 비해 학생들이 얻는 실질적 혜택이 거의 없어 공학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도 일부 학과에서 공학인증을 폐지했고, 카이스트(KAIST)와 포스텍은 공학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공학교육인증원 관계자는 “취업에 중점을 두는 대학이 아닌 경우 공학인증에 대한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학인증의 실효성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그 부분은 당장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차고 넘치는 ‘자격증 딜레마’
공학인증만이 아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각종 민간자격증도 구직자를 울린다. 시간과 돈을 들여 자격증을 따도 막상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격증에 집착하다 취업 시기를 놓치는 구직자도 속출한다.
2014년 국문학과를 졸업한 박모(28)씨는 아직도 취업준비생이다. ‘백수’였지만 졸업하고 2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자격증 11개를 땄다. 김씨가 지닌 자격증 중에는 토익과 중국어, 컴퓨터 자격증은 물론이고 바리스타, 빅데이터 자격증도 있다. 수십,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 서류전형을 통과하려면 ‘스펙’이 탄탄해야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조금 고생스럽지만 자격증을 손에 쥘 때면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빅데이터 자격증을 어떻게 따게 됐는지 면접관 앞에서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박씨는 “돈은 돈대로 들여가며 자격증을 ‘수집’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각종 자격증은 차고 넘친다. ‘자격증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다. 이런 자격증 가운데 대부분은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등록 민간자격증’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등록 민간자격증은 2만782개다. 2013년 주무부처에 등록만 하면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는 사전등록제도가 도입되면서 크게 늘었다. 체계적인 관리가 되는 ‘국가자격증’(149개)이나 ‘공인 민간자격증’(100개)과 달리 누구나 발급할 수 있는 등록 민간자격증이 늘어나면서 구직자들이 ‘헛물’을 켜는 일도 잦다. 첫 직장을 구하는 청년층뿐만 아니라 재취업을 준비하는 장년층도 ‘자격증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허모(53·여)씨는 지난 1년 동안 경락마사지 자격증을 비롯해 각종 마사지 관련 자격증을 땄다. 나이가 많은 탓에 자격증이라도 많아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학원비에 자격증 발급비까지 600만원 넘는 돈을 썼지만 허씨는 아직도 구직 중이다. 허씨는 “자격증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가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자격증에 집착했던 시간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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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기획] 취준생 ‘자격증 딜레마’… 시간·돈 들여 취득했지만 정작 취업엔 큰 도움 안돼
입력 2016-06-2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