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있는 영국 올리비에상과 미국 토니상은 올해 연극 부문 남우주연상을 같은 작품에 수여했다. 바로 프랑스 극작가 겸 소설가 플로리앙 젤레르(37)의 ‘아버지’에서 각각 주역을 맡은 영국 배우 케네스 크랜햄(72)과 미국 배우 프랭크 란젤라(78)다.
두 원로배우의 연기가 탁월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희곡의 힘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1인칭 시점에서 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흔히 치매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타인의 시선에서 그려지지만 이 작품은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혼란스런 감정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극작가 젤레르는 치밀한 구성력과 입체적인 인물 표현으로 20대 중반부터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프랑스 극작가 가운데 해외에서 작품이 가장 자주 공연되는 극작가로 손꼽힌다.
특히 2010년 장성한 자식을 떠나보낸 데 이어 남편의 불륜으로 깊은 상실감을 느끼는 어머니를 그린 ‘어머니’, 2011년 핵가족 시대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진실’에 이어 2012년 ‘아버지’까지 소위 가족 3부작은 그를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극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영국의 경우 ‘아버지’가 2014년 초연돼 극찬을 받은 후 지난해 웨스트엔드에 입성한데 이어 올해 전국 투어를 돌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머니’와 ‘진실’도 올 상반기 런던에서 잇따라 공연됐다.
젤레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올해 한국 무대에도 오른다. 연출은 각각 박정희와 이병훈이 맡았다. 국립극단은 두 작품이 형식과 주제 면에서 닮은 것에 착안해 7월 13일∼8월 1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루씩 번갈아 공연한다. 주말에는 두 작품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다.
‘어머니’역시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의 고통스런 내면을 1인칭 시점에서 그렸다. 현대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고령화와 우울증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닮은꼴이다. 둘 다 같은 장면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주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주역은 각각 원로배우 박근형(76)과 윤소정(72)이 맡았다. 두 배우는 27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을 읽은 뒤 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작품의 기발한 설정과 표현법이 정말 흥미로웠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형은 1958년 연극을 시작해 1964∼67년 국립극단의 간판배우로 활동한 바 있다. 2012년 ‘3월의 눈’으로 국립극단을 다시 찾긴 했지만 과거 활동무대였던 명동예술극장에서 서는 것은 40년 만이다. 그는 “연극은 배우인 나를 만들어준 밑거름이자 모태다. 배우를 만드는데 50년이 걸린다고 하던데, 일흔 살이 넘은 지금 배우를 시작하는 것 같다. 내 몸 안에는 연극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소정은 2013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에이미’ 이후 3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온다. 그동안 작품을 통해 13번이나 호흡을 맞춘 원로배우 이호재와 ‘어머니’에서 또다시 부부로 출연한다. 그는 “희곡에 매료돼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신경성 위염에 걸릴만큼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연습하면서 후회도 들었지만 고통이 없으면 작업의 의미도 없는 것 같다”고 웃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고통 받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대위법적으로 나란히 쓰여진만큼 관객이 두 작품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작자 젤레르도 이번 기획에 대해 흥미로워하고 있다”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노년의 내면을 젊은 세대가 가슴 깊이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치매·우울증 부모님 내면 다룬 두 연극 한 무대에
입력 2016-06-2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