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품격’ 저버리면… 견고한 팬심도 깨진다

입력 2016-06-29 00:01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주노, 윤제문, 박유천, 유상무, 김민희, 홍상수, 이창명. 국민일보DB

견고했던 팬덤이 무너졌다. 네 건의 성폭행 고소 사건에 휘말린 박유천에게 오랫동안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연예인 팬덤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박유천 사건 뿐 아니라 홍상수 감독·배우 김민희 불륜 스캔들, 가수 강인·버벌진트·개그맨 이창명·배우 윤제문의 음주운전, 개그맨 유상무 성폭행 고소 사건, 가수 이주노 성추행 등 최근 사건들을 통해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애정이 얼마나 한순간에 식을 수 있는 것인지 확인됐다. 대중의 응원과 지지는 심리적으로 힘이 될 뿐 아니라 실질적인 수입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범죄를 저질렀거나 사고를 냈거나 도덕적으로 질타 받을 만한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 애정어린 관심은 급속냉각 된다.

최근 들어 사건·사고 연예인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지 않더라도 연예인은 ‘공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타의 몸값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유명 연예인이 되면 돈과 명예를 획득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이 두터워지면서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도 커지게 된 것이다.



‘사회적 물의’는 팬덤도 무너뜨린다

박유천이 속한 아이돌 그룹 JYJ 인터넷 팬클럽은 지난 17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박유천을 지탄한다. 앞으로 그와 관련된 모든 활동이나 콘텐츠를 철저히 배척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지를 철회한 정도가 아니라 ‘배척’을 선언했다. 깊은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방패가 되어주길 거부하고 ‘안티팬’으로 급선회했다.

JYJ 팬들은 박유천이 전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분쟁이 있을 때 심리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JYJ의 방송 출연을 위해 1억6000만원의 성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랬던 팬들이 떠나는 모습은 아이돌 팬덤을 ‘맹목적 팬심’으로 여겼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팬덤의 붕괴는 강도 높게 요구되는 연예인의 사회적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 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거나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한다. 신뢰를 저버린 스타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적극적인 팬덤의 한 모습인 셈이다.

연예인이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모바일 등으로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상황에서 관리되지 않는 순간이나 상황이 포착되면 여지없이 무너질 수 있다.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춰야 좋은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사건들은 연예인이 아무리 오랫동안 명성을 쌓았더라도 제대로 된 성품이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꾸며낸 이미지를 완벽하게 관리해 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예인에게 날카로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지나치다는 의견도 많다. 연예인 사건이 정부나 국회의 중요한 실책을 덮는 데 악용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연예인,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

연예인에게 이미지라는 허상보다는 개인의 성품이라는 실상이 더 중요해졌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연예인의 삶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연예계 활동을 해온 이들 가운데 그런 부분을 절감하는 이들도 많다.

연예계에 몸담은 지 30년 된 배우 김혜수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누군가 봐주지 않고 ‘제발 됐어, 그만’하면 그만해야 하는 게 이 직업이다. ‘이게 내 인생이고 내 길이야’라고 하더라도 저희 직업 자체가 그런 ‘결정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손예진은 “한국사회가 연예인들에게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바라는 지점이 있다”며 “도덕적으로도 그렇고, 말실수라도 하게 될까 두려움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아역배우 출신 유승호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할 때가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을 보고) ‘그동안 다 연기한 거 였구나’라고 생각할까봐 걱정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연예인들 중에 이런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잘못된 길을 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반면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봉사 활동 등을 통해서 부담을 이겨내고 삶의 긍정적인 면을 찾는 경우도 많다.

문수정 권남영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