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반팔 셔츠와 흰색 반바지 차림의 한 선수가 잔디에 머리를 파묻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누구도 그를 일으켜 세우지 못할 정도로 슬픔은 깊고 아팠다. 어디선가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 노래가 들려오는 듯 했다.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노래 말이다.
푸른 잔디밭 그라운드에서 한참 울던 사내는 동료들과 부둥켜 안았다. 그는 바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29·FC 바르셀로나)였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포드 메트라이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코파아메리카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은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간의 혈투 끝에 0대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1번 승부차기 키커는 메시로 결정됐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그의 얼굴은 서늘할 정도로 결연했다. ‘반드시 우승하게 말겠다’는 각오가 칼날처럼 눈동자에 빛났다.
왼발로 강하게 슈팅한 볼은 크로스바를 크게 벗어나 골대가 아닌 허공을 날아갔다. 메시는 머리를 감싸쥐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먼저 승부차기를 한 칠레의 첫 번째 키커 아르투로 비달(29·바이에른 뮌헨)의 슛이 막힌 상황이라, 메시의 킥이 성공됐더라면 아르헨티나가 결정적 승기를 잡을 상황이었다. 결국 네 번째 키커 루카스 비글리아(30·라치오)의 슛이 칠레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33·바르셀로나)에게 가로막혔고, 칠레의 프란시스코 실바(30·치아파스)가 다섯 번째 승부차기를 침착하게 성공시켜 승부차기 4대2 승리를 확정했다.
메시의 얼굴은 그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간 듯 망연자실해 있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동료들. 우승을 차지하고 패자를 위로하는 칠레 선수들…. 메시의 뻥 뚫린 가슴 속으로 죄책감이 몰려왔다.
메시는 축구선수로서 거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조국의 유니폼만 입으면 좀처럼 우승컵에 손이 닿지 않았다. 승리의 신은 이번에도 그에게 남미축구 최정상에 오르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1년 전에도 메시,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칠레를 만나 똑같이 승부차기에서 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15년엔 메시만 승부차기 골을 성공시켰고, 2016년엔 그렇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메시의 울음은 그때보다 훨씬 컸고 훨씬 깊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이 그의 가슴을 갈라 놓은 듯 했다.
메시는 이번 대회를 통해 조국이 1993년 우승 이후 23년 동안 이루지 못한 코파 아메리카 정상과 국가대표로서의 3번째 타이틀을 조준하고 있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지금까지 30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유독 대표팀에선 상복이 없었다. 고작 그가 얻은 대표팀 구성원으로서의 타이틀은 2005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우승,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 국가대표로서 이룬 경력의 전부다.
메시는 그동안 수도 없이 스페인 귀화 제의를 뿌리쳤다. 16살 소년의 나이로 FC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 입단해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그가 귀화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조국에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 우승 트로피를 안기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스페인에서 성공을 이뤘고, 바르셀로나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스스로가 아르헨티나인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다.
메시에게 이번 대회 우승은 1년 전 패배의 설욕, 또는 100주년 트로피 쟁취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때보다 전의를 불태웠다. 메시는 개막전부터 4강전까지 5골을 넣었다. 6골을 넣은 칠레의 에두아르도 바르가스(27·호펜하임)에 이어 개인 득점 2위다.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앞세워 유일하게 5전 전승을 질주했지만 정작 결승전에서 안데스산맥처럼 높은 칠레의 수비벽을 넘지 못했다.
메시는 경기를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을 통과하면서 만난 기자들에게 “결심했다. 이것으로 (대표팀 경기에 뛰는 것은) 끝”이라며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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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메시, 난 끝이야… 국가대표 은퇴 선언
입력 2016-06-28 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