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배병우] 브렉시트와 대중의 반란

입력 2016-06-27 19:58

한 국가 구성원의 인성과 행동양식에 공통성이 있다는 국민성 이론이 맞는다면 영국인을 대표하는 특성은 실용주의와 온건함이 될 것이다. 소설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에세이 ‘영국, 당신의 영국’에서 “영국인은 추상적인 사고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들은 어떠한 철학이나 체계적인 세계관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썼다. 또 점진적 진보에 대한 선호와 대규모 유혈이 없다는 점이 영국사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프랑스가 국왕의 목을 단두대에서 자르는 대혁명의 불길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이를 ‘몽매하고 잔혹한 열정이 이끄는 전제(專制)’라고 비난한 것은 영국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였다.

이처럼 조심스럽고 극단과는 거리가 먼 영국인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브렉시트’라는 미지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경제적 충격과 안보 위험, 국제적 위상 추락에 대한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말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주요 글로벌 대기업 경영자들이 거듭 경계신호를 보냈지만 허사였다.

투표 직후부터 영국 경제는 불확실성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잔류 여론이 압도적인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다던 대영제국이 웨일스와 잉글랜드로만 구성된 조그만 나라로 축소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찍부터 브렉시트는 자해행위(self-harm)라고 경고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도 브렉시트의 부정적 영향은 분명하게 예측됐다면서 같은 표현을 썼다.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실용적인 국민성으로 이름난 영국인의 이러한 비이성적 행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24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정치적 중도파가 무능과 단견으로 극우와 극좌가 함께하는 길을 터줬다고 지적했다. 중도파가 그들이 대변해야 할 중산층과 연결할 수단과 설득력을 잃은 가운데, 반(反)이민을 주창하는 극우와 금융자본을 비난해 온 극좌가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쉽고도 선동적인 해법에 대한 집착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같은 경로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라크전 참전, 2008년 금융위기, 노동계급의 임금 정체, 억만장자들의 조세 회피 등을 정치적으로 심판할 기회를 갖지 못한 영국인들이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브렉시트를 타깃으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NYT 칼럼니스트 로저 코헨은 유럽연합 내 폴란드 등 가난한 회원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 일부 정치인이 부채질한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을 최대 원인으로 지목한다.

정확한 배경이야 무엇이든 ‘조심스러운’ 영국인이 이처럼 과감히 고립과 반(反)세계화의 길로 뛰어든 것은 미국·프랑스 등 다른 어느 선진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역대 최악의 영국 총리로 기록될 수도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이 3년 전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을 때 그는 결코 오늘 같은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주어지면 국민은 이성적이고 합당한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국민은 변덕스럽고 감정에 휘둘리며 귀 기울이지 않는 대중에 불과했다.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란(The Revolt of The Masses)’에서 묘사한 그 대중 말이다. 한국의 정치·사회·경제적 단층선은 영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한국 정치인들이 이번 브렉시트 충격을 영국 일로만 보지 말아야 할 이유다. 배병우 국제부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