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사각지대] 정부 “사내하도급 양지화” vs 노동계 “불법만 합법화”

입력 2016-06-27 19:27 수정 2016-06-27 22:07


정부는 19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못한 채 폐기된 파견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하고 있다. 파견 고용 범위를 넓히는 내용이다. 정부는 더 나쁜 간접고용인 도급과 불법파견을 양지로 끌어내고, 퇴직 장년층과 일손 부족한 중소기업이 윈-윈(win-win)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지만 의구심은 여전하다.

지난해 노사정위에서 논의된 내용조차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여당 발의로 조급하게 제출한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과 도급, 그리고 불법파견으로 엮인 문제 전반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에 정부 내부에도 공감대가 있었다. 기업의 고용이 도급에 몰리는 현실은 어떻게 바꿀지, 불가피한 경우 ‘안전한 간접고용’을 어떻게 유도할지 등을 근본적으로 고민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은 인력 없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파견법 개정안의 핵심은 55세 이상 근로자는 파견 제한 업종 적용을 받지 않고, 뿌리산업의 6개 공정에도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것이다. 또 고소득 전문직종에도 파견을 허용토록 했다.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는 업종과 사유를 늘렸다.

뿌리산업과 55세 이상 노동자의 파견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근거는 중소기업 인력난이다. 취업난이 심각하다지만 열악하고 영세한 중소 제조업체나 뿌리산업 하청업체들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노사정이 합의했던 근로시간 단축(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이 실현되면 이들 업체의 인력난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적은 비용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급히 구하려는 고용주에게 파견은 매력적인 수단이다. 영세 업체들이 집결된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 등에서는 현행법에서 허용하지 않은 수준까지 파견을 활용하는 불법파견이 만연해 있다.

정년퇴직하거나 회사에서 퇴직 압박을 받는 중장년층은 파견 일자리 기회라도 넓어지길 원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부도 같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일각에선 중장년 일자리 기회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개정안에서 더 나아가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 업무까지 파견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효과는 미지수

정부의 결론은 결국 현재 열악한 일자리 수준을 높이는 대신 일단 질 낮은 일자리라도 쉽게 고용하고 취업할 수 있게 하자는 현실론이다. ‘열악한 일자리를 더 확대시키는 법’이라는 노동계 비판도 틀릴 게 없다.

더욱이 파견법 개정안의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한양대 박철성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파견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한국의 현재 파견 규제가 지나치게 강해 근로자의 노동시장 진출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파견 규제를 풀어야 고용이 늘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독일이나 일본에서 파견 규제를 완화해 고용을 늘린 사례도 파견 완화 주장의 근거다. 정부는 파견 규제가 강화된 탓에 사내하도급이나 불법적인 위장도급 등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설명한다. 파견 문호를 넓히면 불법 도급 등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파견 근로 합법화는 불법 사내도급을 적법 파견 근로로 전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현실은 다르다는 반론도 높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2014년 정부 용역으로 진행한 ‘파견허용 업무의 합리적 조정에 관한 연구’에서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려면 파견 범위를 넓힐 필요성은 있지만, 그 결과 전체 고용이 더 늘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사내하도급이 양지화될 것이라는 주장에도 노동계는 오히려 ‘불법만 합법화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도급 규제 병행 등 고민해야

기업이 도급 인력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절감이다. 파견근로자는 같은 업무를 하는 근로자와 차별할 수 없고, 일정 기간 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해야 하는 등의 규제가 있다. 이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파견 범위를 늘린다고 해서 기업이 도급 대신 파견을 쓰려고 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고용부 정지원 근로기준국장은 “기업이 도급 대신 파견을 사용하도록 어떻게 유인할지 고민이 있다”며 “일단 과도하게 막힌 파견 문을 조금 더 열 필요는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를 진행했던 노사정위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당시 노사정은 최종 합의는 못하고 공익위원 의견만 정리했다. 공익위원들은 파견 규제를 완화할 때 사내 하도급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무 도급업 규제 방안’ 등을 병행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기업을 파견으로 끌어들이려면 도급에 대해서도 적정한 관리·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청·용역업체 노동자에 대해 원청회사나 발주회사를 ‘공동사용주’로 지정해 법적 사용자 의무를 공동으로 지도록 하는 방안 등도 제시됐다.

인력뱅크 육성 등 고민도 시작돼야

근본적으로 쪼개기 계약이나 단기 근로 등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파견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불법파견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처벌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아가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은 궁극적으로 ‘상시파견업’ 육성이 대안이라고 봤다. 상시파견업은 파견업체가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필요로 하는 업체에 인력을 보내주는 방식이다. 파견업체에 소속된 정규직인 셈이다. 파견을 나가지 못하는 기간에는 최소 수준의 임금을 파견업체가 보장해야 한다.

시간선택제나 육아휴직 등 근로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생기는 노동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키로 했던 인력뱅크도 보완책이 될 수 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방안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면서 “파견업체가 계속고용을 하도록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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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