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News Makes Good News.’ 기자 시절, 내 책상머리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밝고 따뜻한 ‘좋은’ 기사보다는 각종 재난과 사고 등 ‘나쁜’ 기사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그래야 독자의 관심을 더 끌 수 있으니까- 언론 입장에서 기자의 좌우명이랄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런 과거의 나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를 한 편 봤다.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맨해턴 나이트(2016)’. 현대판 하드보일드 필름 누아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에서 브로디는 영화 첫머리에 대뜸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폭력, 스캔들, 살인을 판다 … 신문을 판다는 말이다.” “나는 신문기자다. 말을 바꾸면 멸절위기종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요즘은 수백만명의 아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보도와 논평을 하는 세상 아닌가… 전에는 내 글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가족과 함께 먹고사는 걸로 만족한다.”
‘무관의 제왕’으로까지 칭송되던 기자의 위치가 언제 이렇게까지 됐나싶어 처량하지만 어쩌랴, 세상이 달라진 것을.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려지는 기자는 대체로 ‘정의의 사도’였다. 경찰도 해결하지 못하는 범죄사건을 파헤치고 국제 첩보전에서도 맹활약하는.
코트 깃을 세우고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누비는 기자상이 우리들 머리에 새겨진 것도 그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온 기자의 이미지 덕분이었을 터. 브로디도 이런 민완기자다. 탐사보도 전문 일간지 기자로 일주일에 사흘의 마감시간만 지키면 된다. 데스크의 지시도 없다. 그래서 그는 맹렬한 조사 끝에 경찰도 포기한 유명 영화감독 변사사건을 해결한다. 다만 고인의 미망인과 가지게 된 부적절한 관계 탓에 세상에 진실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에서 브로디는 “요즘도 누가 종이신문을 보느냐”는 물음에 “아직 종이를 만지고 잉크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답한다. 정말 그렇다면 종이신문과 신문기자의 미래도 완전히 깜깜하지만은 않은 걸까.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76> 기자영화
입력 2016-06-27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