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길 <12> 세상을 재건할 ‘느헤미야 리더십’ 양성의 비전

입력 2016-06-27 21:34
김영길 장로 부부가 1996년 5월,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 브린모어여대 졸업식에서 딸 종민(가운데)씨와 함께하고 있다.

한동대 개교준비를 하던 1994년, 국내에는 159개의 대학이 있었다. 나는 ‘또 하나의 대학을 필요로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했다. 한동대 1회 졸업생이 사회로 진출할 즈음에는 21세기 글로벌 경제시대로 세상이 완전히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94년은 월드와이드웹(www)이 개발돼 인터넷이 상용화된 시점이었고, 산업화 시대에서 지식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는 원년이었다. 또 95년은 국가 간 무역 협약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바뀌며 글로벌 경제시대가 열리던 때였다. 이렇게 인류의 문명사적 전환기인 95년에 한동대가 개교하는 것이었다.

총장 제안을 받은 이후로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한동대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시대적 요청이었다. 그리하여 영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21세기의 느헤미야’와 같은 리더십 양성을 목표로 교육 비전과 프로그램을 세우게 되었다.

한동대는 실제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 국내 대학으로는 파격적 실험을 실시하는 일종의 교육 벤처 ‘사건’을 일으켰다. 국내 최초의 무감독 양심시험제도, 무전공 무학과 입학 및 복수 학위 제도, 전교생 생활관 입소 및 팀 담임 교수제도, 전교생 전산교육, 한자교육 및 영어강의 등이었다. 2001년 개교한 미국식 로스쿨(HILS)은 국내 대학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신개념 교육으로, 지금까지 미국 변호사 300여명을 배출했다.

이런 제도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둘째로는 한동대가 신생대학이어서였다. 95년 한동대 인성교육의 가장 기본이 됐던 무감독 양심시험을 치르는 명예 제도를 구상할 때는 미국 브린모어여대에 재학 중이던 딸 종민이가 자기 학교의 명예제도(Honor code)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이 도움이 됐다. 한동의 양심시험제도는 말과 지식, 시간 물질에 대해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직하게 사는 법을 훈련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개교 이후 집에 있던 액자 2개를 학교에 걸었다. 본관 기도실에 걸린 ‘나는 빚진 자라’는 액자는 미국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쳐주신 고 김동명(LA한인침례교회) 목사님이 로마서 1장 14절 말씀을 손수 붓글씨로 써주신 것이다. 나는 진실로 ‘복음에 빚진 자’였고,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기에 ‘학업에도 빚진 자’였다. 귀국해서 이 액자를 집 서재에 걸어놨더니, 하루는 아버지가 보시고 “너희들은 빚이 얼마나 있느냐. 빚진 것이 뭐 그리 자랑스럽다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여 놓았느냐”고 하셨다. 그 후 나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고 쓴 액자도 학교 본관에 걸어 놓았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이타적이어야 한다. 이 두 글귀를 통해 한동인들이 외치는 ‘공부해서 남주자’와 ‘와이 낫 체인지 더 월드(Why not change the world)?’ 구호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새사람 되게 하신 복음의 빚진 자들임을 일깨워 주고, 나아가 한동인들이 조국과 민족, 열방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기꺼이 손해보고 희생하는 삶.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갖는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