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0억 빼돌린 사무장병원 적발… 환수 확률은 ‘희박’

입력 2016-06-27 04:24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100억원을 빼돌린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비의료인이 의료인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이다. 환자 치료보다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고, 수시로 개·폐업을 반복하며 허위·과잉 진료를 일삼는 주범으로 꼽힌다.

건강보험료가 꾸준히 오르는 사이 국민 건강을 위해 쓰여야 할 돈은 ‘사무장’의 지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다. 매년 100여곳이 넘는 사무장병원이 적발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들로부터 회수해야 할 누적 환수 대상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환수율은 7.3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생협 가장해 100억원 ‘꿀꺽’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박흥준)는 불법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한 뒤 생협 명의 병원 2곳을 이용해 2011년 5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요양급여비 약 100억원을 편취한 혐의(의료법 위반 및 특경가법상 사기)로 지난 9일 조모(61)씨와 오모(55)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사무장병원 설립과 운영을 도와준 병원 행정원장 김모(63·여)씨는 의료법 위반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의료생협 제도의 허술함을 이용해 사무장병원을 차렸다. 의료생협은 조합원 300명 이상에 자본금 3000만원 이상이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 A장애인협회에서 간부로 활동했던 조씨와 오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장애인 300명을 조합원으로 등록시켰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장애인 300명은 조합원이 아니었다. 오씨는 출자금 3000여만원을 혼자 전액 납부하고는 조합원들이 출자금을 낸 것처럼 출자금 납입증명서를 꾸몄다. 의료생협은 1인당 최고 출자금을 총액의 20%로 제한한다. 창립총회를 열지도 않았으면서 의사록과 명부를 조작했다.

의료생협은 사무장병원의 ‘우회로’로 자주 악용된다. 의료생협 형태의 사무장병원은 2012년 10% 비중이었지만 지난해 30%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잡초’ 같은 사무장병원

사무장병원은 마치 ‘잡초’ 같다. 뽑고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부터 올 4월까지 적발된 사무장병원은 1048곳(누적 기준)에 이른다. 2009년 7곳에 불과했던 불법 사무장병원은 지난해 190곳으로 급증했다.

사무장병원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 등으로 부당하게 받아간 돈(환수 대상금액)도 계속 늘어 1조원을 돌파했다. 건보공단이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30일 기준으로 환수 대상 금액은 1조2755억원에 달한다.

사무장병원은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적발돼도 이미 챙긴 부당 이득을 빼돌려 반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0일까지 건보공단이 환수한 돈은 942억8000만원(환수 대상 금액의 7.39%)에 불과하다.

건보공단은 자체 조사를 통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되는 병원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 걸려 사무장병원을 수사하는 사이 사무장들은 다른 사람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근저당을 설정해둔다. 사무장병원임이 확인돼도 건보공단이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적발 이후에는 사실상 회수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지난 2월부터 ‘의료기관 관리 지원단’을 운영해 사무장병원을 적극 적발하고 환수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장병원 때문에 건보 재정이 나빠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때문에 사무장병원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한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무장병원을 늦게 적발할수록 환수 대상 금액은 커지고 그만큼 환수는 어려워진다”며 “의료생협 설립 인가 과정부터 건보공단이 관련 서류를 확인하는 등 사무장병원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또 의심기관을 꾸준히 추적 관리하고 내부고발을 활성화하는 등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뉴스]





김판 기자 pan@kmib.co.kr